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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低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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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低 타령

입력
2013.01.3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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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타령이 터지고 있다. 환율변동에 취약한 데다 ‘키코 악몽’에 사로잡혀 환 헤지에 나서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그럴 만하다. 그러나 대기업까지 덩달아 죽는 소리를 하며 은근히 환율방어 정책을 기대하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최근의 엔화 환율을 두고 ‘엔저’니 ‘원화 강세’로 간단히 규정하는 것부터 안이해 보인다. 그날그날의 환율 등락에 대해서도 고저강약을 말할 수는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화의 대 달러 환율이 낮아진 데다 지난 연말 이후 엔화 가치 하락이 분명한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엔저’나 ‘원화 강세’를 수출 경쟁력 약화의 이유로 들어 정책 대응을 촉구하려면 최소한 ‘적정 환율’이나 그런 환율이 실현됐던 ‘환율 안정기’를 기준점으로 제시해야 한다.

1997년 말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국에 밀려든 ‘IMF 사태’나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지금까지도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미국과 유럽의 금융ㆍ재정 위기라는 특수 상황이 그 기준점일 수 없음은 삼척동자라도 알 만하다. 그런데도 현재의 엔저ㆍ원화 강세 타령은 대부분 리먼 사태 이후의 특별한 시기를 사실상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환율 변동은 충분히 예측됐던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과도한 엔고와 원화약세가 수정되는 정상화 과정이다. 금융ㆍ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잇따른 금융완화로 달러화와 유로화 공급이 늘어 엔화는 물론이고 동남아 통화까지 강세를 보인 가운데 유독 원화는 ‘나 홀로 약세’를 이어왔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까지 느껴야 했던 여행객들의 자존심 손상이야 애교라고 치자. 원화약세가 대기업 중심의 수출기업에 전에 없었던 가격경쟁력을 붙여준 한편으로 급등한 원유와 곡물 등의 수입가격을 더욱 끌어올려 소비자에 고통을 주었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 수출기업이 덤핑 수출로 빚은 손실을 국내 소비자에 전가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의 상승은 다른 통화에 대해서와는 달리 봐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일본 정부가 중앙은행의 손목을 비틀어 양적 완화에 나선 결과 엔화 가치 하락에 가속도가 붙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일본의 정책은 미국과 유럽이 앞서 행한 양적 완화 효과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를 불렀고, ‘이웃나라를 궁핍화하는 일본의 통화정책’이라는 우회적 비난을 불렀다. 자동차와 전자 등 50대 수출 종목의 52%가 일본과 겹치는 한국에서, 역사ㆍ독도 문제로 대일 감정도 악화한 마당에 ‘약탈적 통화정책’이라는 인식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아니었다면 엔고는 지속됐을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한 금융완화는 불가피했고, 이미 실질금리 제로 상태에서 양적 완화 이외의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전까지 10년 동안 엔화가 달러당 100~140엔이었고, 달러당 100엔이 지붕을 이뤘다는 점에서 엔화 가치는 앞으로도 하향 조정 여지가 있었다. 통화가치를 떠받치는 경제 기초체력도 현재의 일본은 10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역흑자가 줄다가 적자로 돌아섰고,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세계경제의 호전 기미와 함께 최근 ‘엔 캐리 트레이드’가 늘어나는 조짐도 엔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예고한다. 다른 간섭요인만 없다면 엔화가 달러당 100엔 이하로까지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엔저 타령이 거슬리는 것은 마땅한 정책대응 수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원화의 국제적 지위는 달러나 유로, 엔과 비교가 되지 않아 무모하게 양적 완화 경쟁에 뛰어들 수 없다. 정책당국은 급격한 환율변동을 일시 제어할 수는 있어도 꾸준한 원화 가치 회복을 막을 정당성도 실행수단도 없다. 기업도 엔저 타령 대신 몇 년 동안 엔고 단물만 빨며 기술경쟁력 제고에 게을렀던 자세를 반성하고, 장기적 자구책을 다듬는 데 매달리는 게 낫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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