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가 나타나기 전 모든 악기의 음정을 맞출 때, 오케스트라가 기준음으로 삼는 것이 오보에의 A음(440㎐)이다.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맑은 고음에, 주위 환경이 변해도 음정의 변화가 별로 없는 안정성 때문이다. 오보에의 거장 하인츠 홀리거가 연주하는 마르첼로의 감미로운 '오보에 협주곡 d단조'에는 그 같은 특성이 서정적으로 구현돼 있다. 그러나 홀리거의 이름이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그가 윤이상으로부터 오보에를 위한 작품을 헌정 받을 만큼 현대음악의 중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보에 연주자 전민경(33) 역시 만인의 애청곡인 마르첼로의 작품을 연주하고 박수 받는다. 또 홀리거처럼 윤이상을 아낀다. 지난 해, 윤이상의 '피리'를 콘서트에서 네 차례 연주했다. "겹 리드(reed) 악기로 성음 원리가 오보에와 똑같은 피리를 염두에 두고 지은 곡인데, 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음을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농현기법 등 국악적 요소가 강하죠."
이 곡을 모두 외워서 연주했을 정도로 강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능숙하게 구사하는 현대 음악보다 아주 가끔 선보이는 '가브리엘의 오보에'(영화 '미션' 테마곡)의 절절함에 감명 받기 일쑤다. 그도 잘 안다. 콘서트 때 앙코르 곡으로 '왕벌의 비행'을 현란하게 불어 보이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중학생 시절 자신의 숨결이 곧 영롱한 고음의 선율이 돼 나오는 마술에 취한 그는 나중에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오보에를 전공했다. "현대음악은 독일 유학 가서 제대로 배웠어요." 홀리거와 함께 오보에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잉고 고레츠키의 문하로 들어가 현대음악의 깊은 세계를 맛 봤다. "귀국 독주회에 앞서 북경현대음악제에서 신예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했어요." 지난해 11월 일신홀에서 가졌던 콘서트의 경우, 솔로ㆍ듀엣ㆍ퀸텟 등 실내악적 편성을 망라해 모든 연주곡을 현대곡만으로 구성했다.
그는 열려 있다. "1년에 한 번 꼴로 하는 독주회에서 현대곡을 많이 하고 싶지만 객석 생각에 머뭇거릴 때가 많거든요." 선율이 우선 자신의 귀에 와 닿고 손에 붙는 작품이어야만 한다고 믿는 이유다.
해결책은 소통이다. "작곡가들이 연주자들과 소통해야 대중이 듣기 쉬워요."특히 젊은 연주자가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의무의 차원이라고 그는 믿는다. "연주자라면 당연히 레퍼토리를 확충해야죠." 당위는 그를 만나 즐겁게 내면화됐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