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의사들에게 법인카드를 주고 1명이 최대 1억원까지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의사 수백명에게 수십억원을 뿌린 CJ제일제당(본보 23일자 8면)의 교묘한 리베이트 수법이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의 수사가 미진하다며 CJ제일제당 임원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하고 보완수사를 지시, 리베이트 문제를 놓고 또다시 검경 갈등 기류가 생기고 있다.
쌍벌제 직전에 집중적 리베이트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제약업계 10위권인 CJ제일제당은 리베이트 제공 업체는 물론 의사도 처벌하는 쌍벌제 관련 법안이 2010년 4월 국회를 통과하자 법 시행 전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리베이트를 살포했다.
CJ제일제당은 자사 의약품 처방액이 많은 전국의 의사 266명을 소위 '키 닥터'(key doctor)로 선정한 뒤 임원 J(50)씨 주도로 이들에게 자사 제품 처방 실적에 따라 6개월 동안 최대 1억원까지 사용할 수 있는 법인공용카드를 건넸다. 의사들은 이 카드로 해외여행을 가거나 백화점에서 고가 시계, 가전제품 등을 구매했고 자녀 학원비 등으로도 사용했다.
의사 266명이 6개월 간 쓴 금액은 43억원. 1개월 평균 7억여원으로 사법당국에 적발된 월 리베이트 액수로는 사상 최대 금액이다. 의사들은 1명당 평균 월 1,600만원을 썼고, 1억원 한도를 꽉 채워 사용한 의사들도 10여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들은 CJ제일제당 제품을 경쟁사 의약품보다 보통 3~4배 많이 처방했다.
CJ제일제당은 쌍벌제가 시행된 후에는 법인공용카드를 수거한 뒤 회사 차원의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전국 영업지점장 명의의 법인개별카드를 다시 제공했다. 의사들이 이 카드로 사용한 금액은 2010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2억원이었다.
경찰은 또 CJ 측이 수사가 시작되자 의사들에게 수사에 협조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변호사도 선임해 주는 등 증거 은폐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법인카드 사용 내역 및 포인트 적립 내역 조사에 나서자 CJ 측의 요청으로 의사들이 한꺼번에 백화점과 마트에 회원 탈퇴 및 포인트 내역 삭제를 요청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24일 J씨에 대해 약사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CJ제일제당 법인과 전 고위 임원 K(56)씨 등 임직원 1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리베이트 금액 300만원 이상인 의사 83명은 의료법 위반 및 배임수재 등 혐의로 형사처벌하고 관련 부처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보건소 의사 등 공무원 9명, 대형 종합병원 소속 61명, 개인병원 소속 13명이다.
그러나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경찰의 수사 내용을 반박하며 "법인카드 제공 등은 리베이트가 아닌 일반적인 영업행위"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영장 기각… 경찰 발끈
그런데 검찰은 경찰이 J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보완수사를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배임수재나 뇌물수수 등 혐의를 입증하려면 대가성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내용들이 빠져 있다. 의사들에 대한 보완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러나 "경찰이 신청한 영장은 의사들이 아닌 리베이트 제공자에 대한 영장"이라며 "의사 100여명 모두에게서 대가성에 대한 시인을 받으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26일 일부 내용을 추가해 영장을 다시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서도 "추가조사 없이 당직실에 영장만 제출해 접수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를 두고 경찰에서는 "검찰의 고유 영역인 대기업 사건에 경찰이 손을 댄 데 대한 견제성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반면 검찰은 수사가 미진해 보강수사를 지휘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정황 등에 관해 수사된 내용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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