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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쭈꾸미 할머니 '기부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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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쭈꾸미 할머니 '기부 천사'였다

입력
2013.01.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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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꾸미가 내게 희망이 됐듯, 내가 기부한 쌀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동대문구청 1층 로비. 20㎏짜리 쌀 100포대가 배달됐다. 아들 나성호(50)씨와 함께 1.5톤 트럭에 '사랑의 쌀'을 싣고 온 주인공은 나정순(72)씨.

10여년 전부터 구청과 주민센터에 1년에 한두 차례씩 쌀과 기부금을 몰래 놓고 사라졌던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나씨로 밝혀진 것은 지난 25일.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런 분들이 있어 살맛 나는 동대문구를 만들 수 있다"며 이 사연을 소개한 것이다. 구청 직원 1,300여명이 볼 수 있도록 생중계된 회의에서 나씨의 사연이 세상에 공개됐다.

오랜 기부 덕에 나씨의 사연은 구청 관계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지기는 했지만, 이날 처음 사연을 접한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구청 직원 김광훈씨는 "동대문 쭈꾸미 하면 바로 떠오르는 유명 인사가 기부천사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나씨의 선행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또다른 직원은 "'쭈꾸미 할머니'로도 유명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쌀 할머니'라고도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나씨는 쭈꾸미 식당 10여곳이 밀집해 있는 용두동 쭈꾸미 골목에서 원조집으로 꼽히는'나정순 할매쭈꾸미(목포집)'을 운영하고 있다.

전남 목포에서 옷장사를 하던 나씨는 벌이가 신통하지 않자 1969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노점상, 옷장사 등을 전전하던 나씨가 용두동 골목 귀퉁이에 쭈꾸미 식당을 차린 것이 1980년대 초반. 지붕에서 비가 샐 정도로 낡은 건물에서 시작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손맛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게됐다. 평소에 나씨를 알고 지냈다는 한 구청 관계자는 "(나 할머니가) 손님들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만큼 이제 자녀들도 다 자랐으니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에서 기부를 하게 됐다고 말씀하신 적 있다"고 전했다.

새 옷 한 번 사입어 본 적 없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해 온 나씨는 IMF 외환위기 등으로 경기가 어려워졌을 때도 '조용한 기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쭈꾸미 골목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오정순(49)씨는 "바로 옆집에 있는데도 워낙 티를 내지 않아서 이번에야 기부활동 하시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할머니는 평소에도 손님들에게 '옆집 음식맛도 좋다'고 소개시켜주시는 등 더불어 잘 살아야한다는 자세를 늘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유덕열 구청장은 "나 할머니 같은 독지가 분들을 본받아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동대문구는 나씨가 기탁한 쌀을 다음달 65세 이상 독거노인 등 관내 소외계층 100가구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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