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내 인생만 살았다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연극 속에서 다른 사람으로 산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연극은 내게 힐링이고 살아가는 힘이다."
반세기 동안 연극 무대에 서 온 배우 손숙(69)에게 연극은 그런 것이다. 고등학생 때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보고 연극에 마음을 뺏겼다. 대학에 들어간 1963년 5월, 교내 연극반 공연에 여주인공으로 처음 무대에 섰으나 대학 3학년 때 결혼하면서 연극을 잊었다. 그러던 어느날 명동 거리에서 국립극장 간판을 보자 울음이 터졌다. 연극이 그리웠던 것이다. 1968년 극단 동인극장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유진 오닐 작)로 정식 배우가 됐다.
국내 대표적인 배우로 꼽히는 그의 올해 첫 연극은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어머니'(이윤택 작, 연출)다. 2월 1~1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한다. 1999년 초연부터 2000, 2001년, 2004, 2009년 공연까지 늘 그가 주인공을 맡아 '손숙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모진 세월을 살아온 한국의 어머니 이야기다.
그가 가장 잊지 못할 관객을 만난 작품이기도 하다. 1999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타캉가 극장 공연 때 러시아 관객들이 '마마'(어머니)를 외치며 15분간 기립 박수를 쳤다.
"그렇게 뜨거운 박수를 받아본 적이 없다. 이런 관객을 위해서라면 무대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큰 꽃다발도 아니고 작은 들꽃 한 송이씩 들고 분장실로 찾아와 감동했다며 눈물을 흘리던 그들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국내에서 모노드라마를 가장 많이 한 배우이기도 하다. '담배 피우는 여자' ' 위기의 여자' '셜리 발렌타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그렇게 네 편을 했다. 다른 배우 없이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모노드라마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잘 때도 대본을 끼고 자고, 자다가도 새벽 2시에 일어나 또 대본을 외우고 하면서 무대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무대에 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연습실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연극 배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어머니' 외에 올해 그의 무대는 4월 산울림극장의 창작극, 7월 예술의전당에 올라가는 '여배우의 삶' 등 가을까지 4편이 잡혀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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