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가 묻혀 있는 곳을 떠올리며 매일 기도합니다. 때가 되면 나도 따라 갈테니 편히 쉬면서 기다리라고…."
25일 서울남부지법 406호. 백발에다 앙상한 체구의 노인이 피고인석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법정 안에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아파트 거실에서 치매를 앓던 아내 조모(73)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이모(78)씨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따라 가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비록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씨는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왔다. 아내가 1987년부터 수차례 큰 수술을 받았을 때는 물론 치매 진단을 받은 후에도 성심껏 간병했다. 아내와 새벽 기도를 다니고 하루 종일 아내 곁을 지켰다. 이씨는 "외출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수도권 일대를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노부부의 견고한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1년 전 아내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부터였다. 아내는 이씨가 외도한다고 의심을 품고 입에 담기 힘든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건 당일에도 아내는 이씨가 바람났다며 한 시간 넘게 욕설을 해댔다. 이씨는 참으려고 방에서 거실로 피해다녔지만 아내를 이씨를 따라다니며 "부모 없이 막 자란 놈"이라고 폭언을 했다. 부모를 일찍 여읜 아픔이 있던 이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아내를 넘어뜨려 목을 졸랐다. 이씨는 "같이 가자.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 애들 짐 덜어주는 거야"라고 되뇌었다. 50년간 함께 한 부부의 끝은 비극이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날 재판의 배심원 5명은 이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평결을 내렸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2부(부장판사 김용관)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인간에게 생명의 가치는 가장 중대하고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고령인 피고인이 2년 가까이 피해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병수발하다 모욕을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가족이 선처를 원하고 고령인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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