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해 보겠다고 뛰어든 게 13년 전입니다. 그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다 뭐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버텨냈죠. 하지만 이젠 한계상황입니다. 올해가 진짜 위기예요. 여기 저기 돈 들어 갈 곳은 넘치는 데 지난 1년 사이 매출은 반토막 났어요."
24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모(44)씨는 영업장을 바라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265㎡(80평) 공간에 놓인 50대 컴퓨터 가운데 손님이 앉아 있는 자리는 10여 곳에 불과했다. 예년 이맘 때 같으면 초중고생들이 몰려와 '겨울방학 특수'를 누렸겠지만 지난해부터 주 5일제 수업이 실시되면서 방학기간이 줄어들어 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더욱이 두 달 전엔 마이크로소프트(MS) 한국지사 관계자가 찾아와 "윈도 정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통보까지 하고 간 상황. 김씨가 윈도 정품을 사려면 1,400여만원을 지출해야 한다. 여기에 오는 6월 전국 PC방에 흡연실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약 500만원의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한다. 한꺼번에 밀어 닥친 3중고 앞에서 김씨는 요즘 그야말로'멘붕'상태다.
다른 PC방 운영자들의 상황도 김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보유 3,000만명 시대에 PC방을 찾는 사람이 자연스레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요즘처럼 앞이 깜깜한 상황은 개업이래 처음이라고 PC방 업주들은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글로벌 정보통신(IT)기업 MS다. 국내 컴퓨터 10대 가운데 9대에 설치된 운영체제(OS) '윈도' 제작사 MS가 독점적 시장 지위를 이용, PC방 업주들을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자로 몰아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0년대 초 MS가 '윈도XP'가정용 버전을 판매하며 'PC 교체 시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더니, 최근 들어선 '교체한 PC에 기존 윈도를 설치하면 불법'이라며 신제품 구매를 종용하고 이를 무시하면 고발까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MS가 PC방용으로 내놓은 신제품 '윈도8'의 정가는 28만원대인 반면 개인용 제품은 8만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PC방 한 곳에 평균 60대 컴퓨터가 있는 걸 감안하면 정품 설치비용은 무려 1,600만원을 넘게 된다. 갑작스런 MS의 요금 폭탄에 화가 난 업주 250여명은 지난달 17일 서울역 광장에 모여 컴퓨터를 부수는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정부 정책 변화로 인한 어려움도 있다. 오는 6월부터 간접흡연 및 청소년 흡연 방지를 위해 '국민건강증진법'개정안이 시행된다. 이에 따라 전국 모든 PC방에선 완전히 차단된 흡연실을 둔 경우를 제외하고는 흡연이 전면 금지된다. 때문에 업주들은 법 시행을 앞두고 수 백만원을 들여 공사에 나서야 할 판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PC방 주인은 "최근 PC 4대를 빼고 공사비 300만원을 들여 흡연실을 만들었다"며 "흡연피해를 줄인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업주들의 현실적 어려움도 감안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PC방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는 기존 인테리어 교체주기 등을 감안, PC방 전면금연에 대한 유예기간을 3년 더 연장해달라는 건의안을 이달 초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최근 게임 유료접속 추세 역시 PC방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다. PC방은 고사양의 그래픽과 처리속도가 필요한 온라인 게임을 즐기기엔 최적의 장소.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등 기존 유명 게임을 제공하기 위해 PC방 업주들은 게임사로부터 구매한 게임 CD를 설치만 하면 됐다. 하지만 요즘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이 아이템을 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게 PC방용 게임에만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업주들로부터 이 서비스'이용료'를 따로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보통 고객이 PC방에 시간당 지불하는 이용료 1,000원 가운데 약 250원 정도가 게임사에 돌아가게 된다. 심한 경우 절반을 게임사가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업주들의 이윤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사실 PC방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게임 중독을 일으키고 음란물 접속 등으로 각종 범죄를 양성하는 곳이라거나, 담배연기 자욱한 비위생적인 장소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는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의 적용을 받아 만 18세 이하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출입은 금지됐고, 2011년 말부터는 자정 이후 청소년의 게임이용을 금하는 '셧다운제'마저 실시되고 있어 미래 전망이 암울한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PC방수 역시 지난 2007년 2만355개에서 4년 뒤인 2011년 1만5,740개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PC방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업주들도 환경개선 등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며 "영세한 소상공업종인 만큼 정부도 관련 정책을 시행할 때 속도조절 및 각종 지원책 등도 함께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PC방에 대한 부정적 시선 마음 아파… 이미지 개선 노력 등 성원해 줬으면""PC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지만, 게임산업 발전 및 IT문화 확산에 기여한 측면은 제대로 평가 받았으면 합니다."
전국 PC방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인터넷문화컨텐츠서비스협동조합(한인협) 최승재(47ㆍ사진) 이사장은 24일 최근 MS의 정품 단속 등 당면 문제들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지만 PC방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시선이 종사자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PC 방이 언론 등을 통해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이는 이용자들의 잘못된 습관으로 발생하거나 그 부작용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항변이었다. 그는 "문제가 있다면 이용문화나 서비스 개선 등 노력을 해야지 무조건 없앨 대상으로만 보면 소상공인인 전국 1만5,000명의 업주들은 당장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PC방 업주들의 대표적인 모임 가운데 하나인 한인협은 전국 PC방 7,000여개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최 이사장은 현재 이미지 개선을 위해 업주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작단계지만 내부 인테리어나 조명을 밝게 꾸미고 청소년 보호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지역 주민센터와 협약을 통해 컴퓨터 교육장으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스마트워킹센터' 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부의 인식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라는 게 최 이사장의 설명. 그는 "PC방은 과거 정보통신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관할부서가 이관되면서 'IT시설제공업'이 아닌 '게임 제공업'으로만 인식돼,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는 6월 전면 시행될 금연규제에 대해선 "PC방 업주들도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닌 만큼 정부가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흡연실 설치가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적어도 1~2년의 준비기간을 달라는 주장이다. MS의 정품 단속에 대해서도 "정부도 조달PC 등을 무조건 MS의 '윈도'로 쓰게 하는 등 시장 독점화를 유도한 만큼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PC방을 바라보는 정부와 업계의 시각 차를 좁힐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며 "PC방이 전국에 자리한 좋은 IT인프라인 만큼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전향적인 접근을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이보라 인턴기자 (서강대 수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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