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형국이 이런 것일까. 이쯤 되면 만신창이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끌끌 혀 차는 소리는 모두 그의 몫이다. 충격이 클 것이다. 34년 법관 경력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렇게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일말의 동정도 실려 있지 않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야기다.
인사 청문회에서 드러난 이 후보자의 과거 행태와 인식은 충격적이다. 국민 상식은 물론 일반 공직자들의 그것과도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청문회 내내 과연 이 후보자가 자신을 공직자라고 생각하기나 한 것인지 궁금했다.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 혈세로 봉급을 받는다는 인식이 있기나 한지 의아했다. 그는 별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법조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가 왜 이토록 가혹한 평가를 받는 처지가 됐을까. 물론 개인 성향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성공과 명예, 부에 대한 그의 집념 같은 것이 도덕이나 윤리 같은 가치를 경시하는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뿐일까. 그는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사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남들은 한번 하기도 어려운 법원장을 두 번이나 하고 헌재재판관이 됐다. 선민(選民)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사법부와 헌재는 정부 부처보다 감시가 훨씬 느슨하다. 구성원들은 동류 의식이 강하고 조직 문화도 내부 고발이나 비판이 어려울 만큼 폐쇄적이고 경직돼 있다. 6년 전에는 헌재재판관 인사 청문회도 거뜬히 통과했다. 어떠한 감시와 견제 없이 임기 6년이 보장된 최고 헌법기관에서 근무하며 '나는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 해'하는 의식이 깊어졌을 것이다. 헌재재판관 퇴임 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되는 운이 따르리라곤 예상치 못했을 테니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리자는 식으로 6년을 보냈는지 모른다. 그러니 공금을 유용하고도 관행을 방패 삼아 끝내 잘못된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은 것 아닐까.
자신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직 제의를 사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떳떳하다고 여겼다. 만일 중ㆍ하위직 공무원이 6년 동안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수사기관에 불려가 치도곤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리 직원의 사용지침 고지에도 6년간 3억2,000만원을 개인계좌에 넣은 뒤 자산 증식에 사용했다. 성인이 된 딸을 관용차로 출근시키고, 해외출장을 갈 때는 수시로 부인을 동반했다. 공사 구분은커녕 온갖 불법, 탈법, 편법 행위를 했다. 그럼에도 청문회에서 무슨 문제냐는 식이었다. 정말 이 후보자는 그런 것들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더 경악할 일이다. 법 전문가라면 법과 규정을 따져보는 게 순리일 텐데도 그는 멋대로 행동하고 해석하고 정당화했다. 법은 안중에도 없는 헌재재판관. 그러고도 어떻게 국민에게 헌법의 가치와 정신을 말하고 법 준수를 당부할 수 있었을까. 파렴치다.
이 후보자의 빗나간 행태가 남긴 상처는 넓고도 깊다. 헌재와 법원은 물론 그 구성원들의 도덕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믿음에 금이 가게 했다. 공정한 판결을 위해 매일 엄청난 재판 기록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자괴감과 낭패감을 안겼다. 헌재와 사법부가 국민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 감시가 강화한다면 국민에게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새로 출범하는 정권에도 부담을 안겼다. 새 정권이 고위직 인사 때마다 종전보다 더 엄정한 잣대로 검증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흠결 없는 인사를 찾는데 더 심혈을 기울이게 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가뜩이나 보수ㆍ진보로 양분돼 축소된 인재 선택의 폭이 더 좁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자격 미달인 이 후보자를 택한 새 정권의 업보다. 이래저래 이 후보자가 가야 할 길은 정해진 것 같다.
황상진 부국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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