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야구 최강으로 군림하던 쿠바 선수들은 국제 대회에서 만난 자그마한 체구의 한국 선수가 펑펑 홈런을 터뜨리자 넋을 잃고 바라봤다. 유독 쿠바전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신체 핸디캡을 극복하고 ‘리틀 쿠바’라는 닉네임으로 아마ㆍ프로야구를 평정했던 박재홍(40ㆍ전 SK)이 17년 정든 그라운드에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박재홍은 25일 오후 서울 마포가든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시절의 소회와 향후 진로를 담담하게 밝혔다. 그는 “배트를 내려 놓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 다른 선수들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있고 잘할 자신은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만두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고민 끝에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다른 방법으로 야구 발전을 위해 힘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은퇴의 변을 전했다. 그는 “1월까지 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많다는 것을 느껴 그만두기로 했다”고 덧붙여 선수협회장직이 타 팀 이적에 걸림돌로 작용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박재홍은 “프로야구 선수로 30홈런-30도루를 세 번 달성하고 팀 우승을 5번 이끌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드렸다고 생각한다. 비록 1년이지만 선수협 회장으로 봉사하는 기회를 맞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선수를 하나로 집결시켜 10구단 창단을 이뤄낸 것이 뿌듯하다. 비록 나는 10구단의 수혜를 못 받지만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신인이던 1996년 잠실구장에서 사상 첫 30홈런-30도루 클럽을 개설했을 때였다고 떠올렸다.
박재홍은 “300개 도루에 남겨 놓은 33개는 앞으로 할 수 없겠지만 방송에서 시청자의 마음을 훔치도록 하겠다”며 해설자로 야구 인생의 2막을 열 계획도 밝혔다. 자연스럽게 선수협회장직도 내려 놓는다.
박재홍은 지난해 11월 SK의 은퇴 권유를 뿌리치고 현역 생활 연장 의사를 비쳤다. SK도 그의 뜻을 받아 들여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지만 박재홍을 찾는 팀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1996년 현대에 입단한 박재홍은 두 차례의 30홈런-30도루를 포함해 ‘300홈런-300도루’에도 도루 33개만 남겨 놓았던 호타준족의 대명사다. ‘200홈런-200도루’도 박재홍이 유일하다. 그는 “SK의 최정이 내가 못 다한 300홈런과 300도루 기록을 달성할 수 있는 후배”라고 지목했다. 17년 통산 타율은 2할8푼4리에 1,732안타, 300홈런, 267도루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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