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한 데 이어 어제 총리 후보자를 지명함으로써 새 정부 출범 속도가 빨라졌다. 새로운 정부에 어떤 이름이 붙든 박 당선인은 약속대로 정권교체를 넘는 시대교체를 이루어 대한민국을 잘 이끈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정치는 곧 정명(正名),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대로 정부와 조직의 이름을 새롭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와 같은 역대 정부의 이름은 그런 차원의 고심과 숙고 끝에 지어진 것이다. 그 시대의 가치지향과 국정운영의 방향을 짧은 이름 안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 당선인이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부처의 이름을 대폭 바꾼 것은 잘한 일이다. 개편의 핵심이랄 수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명칭은 잘 지었다고 볼 수 없지만, 나머지는 호평을 받을 만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한 원로 교수가‘이명박 정부의 국어실력’을 통박한 글을 쓴 바 있다. 그는 비서실과 경호실을 합쳐 대통령실이라고 부르고 대통령실장이라는 직위를 만든 것을 국어실력 빈곤이라고 지적했다. 교장실의 주인은 교장인데, 대통령실의 주인은 누구냐는 이야기였다. 또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이런 부처들은 이름만 듣고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데다 보건복지가족부처럼 너절한 이름도 있다고 비판했다.
부처 이름을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어놓은 터에 이 대통령은 박경리 씨 빈소를 찾아“한국문학의 큰 별께서 고히 잠드소서”라고 휘호를 하는 등 이상한 어법과 틀린 맞춤법으로 웃음을 샀다. 이명박 정부의 국어실력은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환원하고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지식경제부를 산업통상자원부로, 교육과학기술부를 교육부로 간명하게 변경한 것은 업무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효율을 기한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서 인용한 교수도 이미 행정안전부라는 이상한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꿀 것을 촉구한 바 있었다.
국가지도자나 국가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우리말과 글에 어둡거나 사용법이 틀리는 것은 간단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대선과정에서 알려진 일이지만, 안철수 전 후보도 ‘꿈꿈니다’ ‘덕을 배풀어야’라고 틀리게 방명록을 썼다가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개인만이 문제가 아니다. 중앙선관위가 교부한 대통령 당선증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당선증의 문장은 ‘귀하는 2012년 12월 19일 실시한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 당선인으로 결정되었으므로 당선증을 드립니다.’라고 돼 있다. 참 어색하고 우스운 문장이다.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으므로’라고 하면 될 것을 이렇게 낡은 어법으로 표현한 문장을 중앙선관위는 벌써 20년 이상 그대로 쓰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인가 당선인인가 하는 문제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우리 헌법은 여러 번 개정됐지만 당선자라는 표기를 바꾼 적이 없다. 반면 각종 선거법령에는 당선인으로 돼 있다. 당선자의 ‘자(者)’가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어서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꿔 불러 달라고 언론에 요청한 이후 당선인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헌법의 표기를 따르는 게 맞다고 본다. 어법상 ‘자’는 합격자 피해자 낙제자처럼 어떤 일의 당사자라는 개념으로 사용된다.‘인’은 문인 언론인처럼 보통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추상적 표현에 주로 쓰는 말이다. 사학자 경제학자 물리학자 등 학자들의 총칭으로 지식인이라는 말을 쓰는 데서 차이를 알 수 있다.
정확하고 세련된 국어로 바로잡고 고쳐야 할 공문서는 정말 많다.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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