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에 대한 각국의 입장은 영어권이냐 비영어권이냐에 따라 다르다. 미국, 영국,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적인 출판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영어권 국가들은 대부분 자유가격제를 실시하고 있는 반면,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 비영어권 국가는 시행착오를 거친 후 도서정가제를 엄격히 실시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통해 출판계를 육성한 나라로는 프랑스와 스웨덴 등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까지 자유경쟁 가격제도 하에 있던 프랑스에서는 대형서점의 할인 경쟁으로 작은 서점들이 위기에 몰렸다. 1981년 좌파 사회당이 집권한 이후 중소출판사들을 육성하고 신문사업을 보호하는 '랑법'(당시 문화부 장관 쟈크 랑의 성을 따 붙여진 이름의 완전도서정가제)을 도입해 위기를 돌파했다. 당시 업체들은 법을 무시하고 할인율을 높이며 저항했지만 벌금 등을 물리며 엄격히 법을 지키도록 해 지역 서점을 살릴 수 있었다. 종수가 줄었던 인문ㆍ학술서 역시 랑법 실시 이후 종류가 늘어나는 등 출판계에 순기능을 촉진했다. 독일 역시 1888년부터 도서가격 추락을 막기 위해 도서정가법을 강력히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도 1970년 도서정가제를 폐지한 후 지방서점이 자취를 감추고 학술 인문서가 급감하는 등 황폐화하자 학술서를 내는 출판사에 손실을 보전해 주는 등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반대로 영어권 국가들은 글로벌 시장 전략으로 도서정가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세계 책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과 미국은 해외 수출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정가제가 방해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도서정가제를 1975년 폐지했고, 영국도 1997년에 없앴다. 이들 나라에서는 대체로 문고판 등은 싸게 내놓고 공이 들어가는 인문서 등은 비교적 비싼 값을 책정하는 등 책 값을 다양화하고, 할인을 할 경우도 그 폭이 크지 않아 자국 내에서 큰 논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우 전체 출판 매출의 97%가 20개 상위 대형 출판사에 집중될 정도로 심각한 독과점 문제를 안고 있는 것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영국도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출판사 숫자와 출판 종수는 적은 편이며, 다국적 미디어그룹이 시장을 주도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다국적 미디어그룹인 아쉐트 출판그룹의 호더 헤드라인 출판사가 도서정가 판매협정에서 자진 탈퇴하면서부터 할인판매 전쟁이 불붙었는데, 독일계 다국적 미디어그룹인 베텔스만의 영국시장 점유율이 16.8%를 차지하는 등 상위 4개 다국적 미디어 그룹이 출판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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