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근대 헌법의 기본 가치가 무참히 핍박받던 인권의 암흑기에 고인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회복하고 어둠을 밝히는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그러한 숭고한 역사관과 희생정신은 장구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이 시대를 호흡하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큰 울림과 가르침으로 남아 연연히 이어지고 있는 바, 고인께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유상재)는 24일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개헌을 주장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974년 징역 15년이 선고됐던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에 대한 재심 첫 공판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하며 이같이 밝혔다. 장 선생의 유족은 2009년 6월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이날 장 선생을 '피고인'이 아닌 '고인'으로 지칭했다. "격변과 혼돈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서 조국 광복과 반독재 민주화 투쟁 등을 통해 나라의 근본과 민주적 가치를 바로 세우고자 일생을 헌신하셨던 민족의 큰 어른이자 스승"이라며 존경을 표한 재판부는 "긴급조치 1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잘못된 과거사로부터 얻게 된 뼈아픈 교훈을 바탕으로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는 국민의 사법부가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며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잘못된 사법부의 과오를 바로잡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검찰도 이날 재심에서 "긴급조치 1호가 무효라는 대법원 최종 판결을 존중한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변호인 측은 "군사법원에서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6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했던 사법 역사의 치욕스러운 한 페이지를 사법부 스스로 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 선생의 장남 호권(64)씨는 재판 후 "만시지탄의 심경"이라며 "국민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서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후 의문사 진상 규명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변론을 맡은 조영선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3년이 넘도록 결정을 내리지 않는 등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선생은 1974년 '개헌 100만인 선언'에 나서는 등 유신헌법 개헌을 주장하다 영장 없이 체포돼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협심증으로 6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이듬해인 1975년 8월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돼 정권에 의한 암살 가능성이 제기됐고, 지난해 이장 과정에서 두개골 유골 함몰 부위가 발견되는 등 의문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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