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기관들이 저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공약 추진의 적임자라며 조직개편, 자금지원확대, 업무확장 등 몸집 불리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더욱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기존 금융산업의 틀을 당분간 유지키로 결정함에 따라, 업무영역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기관들을 중심으로 밥그릇 다툼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책기관들은 당선인이 '손톱 밑 가시'란 표현을 쓸 정도로 중요시하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정책금융공사가 21일 공개한 '2013년도 주요추진계획'에도 이런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소ㆍ중견기업 연간 지원액을 지난해보다 1조4,800억원 늘린 7조6,000억원 배정했고, 현 중소기업금융부를 2개의 조직으로 늘리는 등 역할을 강화했다. 공사는 2009년 산업은행에서 분리된 이후 중소기업 지원 등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을 의식한 행보다. 진영욱 사장은 "중소기업을 키워 중견기업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올해 업무의 주요 목표"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역시 ▲중소ㆍ중견기업에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어난 24조원 이상을 지원하며 ▲소매여신 강화 위해 소매금융그룹 내 소매여신부 신설 ▲중소·중견기업 밀착형 지원 확대 위한 지역 전문가 지점장 임용 등 현장 조직을 강화했다.
수출입은행은 중소기업의 수출지원 확대 등을 위해 현재 8조원인 자본금을 한국산업은행, 한국정책금융공사 수준인 15조원으로 대폭 늘리며 다른 기관과 경쟁을 공식 선언했다. 수은 관계자는 "금융회사와 경쟁할 수 없도록 돼 있는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을 추진중"이라며 "자기자본 15조원 이상의 통합 공적수출신용기관으로 재탄생해 중소기업 수출과 해외 투자 등에 필요한 금융자금을 폭넓게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책금융기관이 한 목소리로 중소기업 육성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차기 정부가 착수할 기관 개편에 대비해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이라는 분석이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기관들이 최근 사업영역을 확대하면서 기업에 대한 보증업무, 해외시장에서 경쟁,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에서 역할 중복이 극심해지고 있다"며 "새 정부의 영역재조정 작업에 대비해 기관마다 내부적으로 별도 팀을 만들어 대응논리를 개발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당선인 1호 공약인 18조원의 행복기금 출범을 맡을 기관을 놓고도 다툼이 벌어질 전망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경우 행복기금 출연금을 캠코 자본금 등으로 마련하는 만큼 "캠코가 기금 운용의 적임자"라고 밝힌 상태다. 아직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정책금융공사, 주택금융공사, 신용회복위원회 등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탄생할 가칭 선박금융공사도 주요 변수다. 정부가 제공한 최소 2조원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한 뒤 해운업ㆍ조선산업 등 선박금융, 해양플랜트까지 양성하는 기관이 될 전망이라 이와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던 수출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의 갈등이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금융기관 개편은 정권 초에 기관간 기능 및 역할을 재설정해 산업은행 민영화와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강동수 한구개발연구원(KDI) 거시ㆍ금융정책연구부장은 "국내외 대출ㆍ보증ㆍ보험업무를 취급하는 다양한 정책기구들 사이에 기능 및 역할의 명확한 구분이 없어 금융지원의 중첩과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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