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차기 정부의 인권 과제'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시했으나 인수위가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에 부합하는지 검토해야 한다며 발표를 보류하도록 요구해 논란이 예상된다. 인수위가 인권위 정책까지 점검·조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인권위 독립성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인권위는 "18일 차기 정부의 인권 과제 12개를 확정해 인수위 정무분과에 전달한 뒤 인수위 측으로부터 공약과 비교해 점검이 필요하니 공표를 잠시 미뤄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23일 밝혔다. 인권위는 전달 당일 보도자료까지 만들어둔 상태에서 인수위의 요구를 받고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인권위가 전달한 차기 정부 인권 과제는 지난해 인권위 내부 설문조사를 거쳐 지난 14일 위원장과 인권위원 10인으로 구성된 전원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됐으며, 이명박 정부 들어 후퇴했다고 평가한 노동 인권, 장애인 인권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 출범 전 인권위는 전원위 공개 안건으로 차기 정부의 인권 과제를 정해 인수위에 전달했으며, 전달 당일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반면 이번에는 6일 상임위 회의와 전원위 회의를 비공개에 부치고 안건을 전달한 지 5일이 지난 시점까지 발표를 하지 않아 인수위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그동안의 절차와 달리 논의를 비밀에 부치고 이례적으로 공개시점을 미루고 있지만 인권위 내부의 문제제기도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번에는 인권 과제를 논의한 상임위와 전원위가 비공개로 진행돼 결정된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며 "모든 논의가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내부에서 비판은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권 과제를 발표하지 않고 미룬 데 대해서도 "인수위와의 업무 협조 차원에서 잠시 발표 시점을 미룬 것일 뿐 외압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 시도하다 실패한 뒤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잡음이 끊이지 않던 현병철 위원장을 임명하는 등 인권위의 위상을 추락시켜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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