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으며 떠나는 것이 성공한 대통령 모습이라면, 우리는 한 번도 성공한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했다. 정변과 권력쟁투로 초기 대통령 넷이 쫓겨나거나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이후 전두환, 노태우는 재직시의 범죄로 법의 심판을 받았으며, YSㆍDJ는 정책실패와 주변비리로 쓸쓸히 권좌를 내려갔다. 노무현은 거의 최악의 평가로 청와대를 떠났다.
하지만 말년이 불행했다고 다 실패한 대통령이랄 수는 없다. 그래서는 보잘것없던 세계 최빈국이 겨우 반세기 만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수직상승의 역사가 설명되지 않는다. 각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시대적 역할을, 그것도 상당히 효과적으로 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승만ㆍ박정희 등 워낙 공과(功過)가 현저한 경우는 재론할 바 아니지만, 역대 가장 저평가되는 노태우도 그렇다. '물'로 비하되던 그의 소극적 리더십이 역설적으로 독재에서 민주정으로 가는 완충적 역할을 해냈다. YS는 고질적인 군부의 정치개입 소지를 원천 제거하고, 금융실명제로 이후 민주적 경제환경의 기초를 만들었다.
DJ는 진정한 권력교체를 실현함으로써 실질적 민주주의를 완성했고,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확대했다. 비록 조급했어도 노무현이 던진 복지와 상생, 탈(脫)권위 화두는 장차 어느 정부도 비껴갈 수 없는 기본가치가 됐다. 그래서 성공한 대통령들이란 말도 아니다. 당대 평가와 별개로 큰 시대적 틀에서는 달리 볼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이명박 시대를 결산하려 꺼낸 얘기다. 청와대가 최근 자찬(自讚)일색의 '이명박 정부 국정성과'를 정리했지만, MB도 박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진 지 오래다. 인사실패나 측근비리 따위는 이전 대부분 대통령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어서 그에게만 유독 박하게 반영할 요소는 아니다.
무엇보다 당대의 MB를 후하게 평가할 수 없는 건 경제 때문이다. '경제대통령 MB'에 국민은 모든 흠결을 덮어둔 채 '묻지마 몰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는 경제를 너무 쉽게 봤다. 투자 확대하고, 수출 늘리고, 재정을 쏟으면 간단히 성장목표를 이룰 거라고 생각했다. 법인세 감면 등의 '기업프렌들리' 정책이나 4대강 등 대규모 정부사업도 그런 것이었다. 거기다 기업경험을 살려 직접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 까짓 7% 성장쯤이야 가능할 듯싶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셈 빠른 기업들이 생각만큼 움직여 주지 않았다. 무역 1조 달러에 금융위기 조기극복 자랑에도 수익은 시중에 풀리지 않았고 성장률도 세계평균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도리어 낙수효과가 사라지면서 친기업정책은 친부자정책으로 변질돼 체감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모두가 기대했고, 스스로도 장담한 주(主)종목에서 실패했으니 차마 성공을 말할 건 아니다.
물론 긍정 평가할 부분은 분명 있다. G20ㆍ핵안보정상회의, 20-50클럽 가입, 국가브랜드 제고 등을 통한 세계중심국가군(群) 진입성과는 일정부분 MB식 적극적 대면외교의 성과임을 부인키 어렵다. 민주적 시민권리의 퇴행, 대북관리 실패 등은 이해와 관점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거니와 4대강, 한미FTA 등 다른 논쟁사안들은 웬만큼 시간이 지나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당장의 평가를 넘어 시대적 역할에 대한 것이라면 더 난감하다. 경제 외에는 이렇다 할 철학적ㆍ이념적 지향이 MB정부에 부재했던 탓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역설적으로 이전 정권까지의 거대담론적 정치를, 먹고 살며 일상의 이해로 다투는 현실의 정치로 바꾼 정도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평가도 시대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못마땅해도 너무 모질지 않게 적당히 여백을 남겨두는 게 좋겠다.
어떻든 역사는 단절이 아니라 누적이다. 좋든 싫든 MB의 유산도 오래도록 한국정치의 환경 일부로 작동할 것이다. MB 평가는 차기를 맡은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의 시대적 소명을 매 순간 정말 두렵게 고민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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