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뒤 벽면 패널을 자르다가 손등이 긁혀 너무 아파 이제 그만둬야겠어."(금고털이범) "조금만 참아 이제 거의 다 됐는데, 계속해야지."(경찰관)
지난해 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전남 여수시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은 현직 경찰관이 치밀한 사전 준비를 통해 금고를 털 것을 먼저 제안하는 등 범행을 주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지검 순천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장봉문)는 23일 여수경찰서 삼일파출소 소속 김모(45) 전경사와 박모(45)씨를 특수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8일 밤 11시쯤부터 9일 새벽 4시까지 여수시의 한 식당에 침입한 뒤 산소용접기 등을 이용해 우체국 벽면을 뚫고 금고 안에 있던 현금 5,213만원을 훔쳐 나눠 가진 혐의다. 이들의 범행동기는 부족한 생활비와 자녀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조사결과 김 전 경사는 1997년 여수경찰서 삼산파출소 등에서 근무 당시 병원장례식장에서 사체를 관리하던 박씨를 알게 된 후 절친한 친구가 됐다. 이후 김 전 경사는 2011년 오락실 사건 비리와 연루돼 삼일파출소로 좌천성 인사조치를 당하면서 생활비가 쪼들리게 되자 한 때 보안실태 조사를 했던 우체국 금고관리가 허술하다는 점에 착안, 범행대상으로 점 찍었다.
그는 우체국을 사전 답사해 휴대폰으로 금고위치 등을 정밀 촬영한 뒤 2005년 이미 은행현금지급기털이를 공모한 바 있는 박씨에게 이를 건네며 범행을 제의했다. 당시 진 빚이 8,000여 만원에 달하던 박씨는 자녀의 대학등록금 부족을 걱정하다가 김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범행 당일 김 전 경사는 공범 박씨가 금고 벽면에 손등이 긁히면서 "범행을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무전기를 통해 계속하도록 설득하는 등 범행을 시종일관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조사과정에서 이들이 훔친 현금 5,029만원을 찾아내고, 범행도구로 사용된 헤드랜턴과 끈 1점 등을 확보했다.
앞서 검찰은 김 전 경사가 여수 모 오락실 업주 A씨에게 황모씨를 바지사장으로 소개하면서 오락실 개설을 돕는 과정에서 A씨에게 300만원을 받고 단속 정보를 제공하거나 기습 단속에 대비해 게임기를 처분토록 한 사실을 추가로 밝혀내고 수뢰후 부정처사및게임산업법위반 방조 혐의를 추가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경사와 박씨가 2005년 여수시 미평동 모 은행 365코너의 현금지급기안 현금 879만원 도난사건의 범인으로 확인됐지만 공소시효(2012년 6월 21일)가 만료돼 '공소권 없음'을 처분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김 전 경사가 '황씨를 살해 지시했다'는 등의 의혹에 대해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현재 재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철저한 수사 지휘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 발생 후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충분한 해명 없이 모두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 의혹 해소에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순천=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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