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범죄심리학자인 표창원(47) 전 경찰대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국제 권고와 판례에 비춰 유죄가 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국정원이 '이벤트성 고소'를 남발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23일 검찰 등에 따르면 국정원은 최근 "표 전 교수가 기고, 인터뷰 등을 통해 국정원과 구성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감찰실장 명의의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냈다. 표 전 교수는 지난달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여직원 댓글 유포 의혹 사건에 대한 의견을 트위터 등에 올렸다가 경찰대 교수직에서 자진 사직했다. 그는 또 일간지 기고를 통해 "정치관료가 예산, 인력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거나 국제 첩보 세계에서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국정원이 무능화ㆍ무력화돼 있다"고 지적하는 등 국정원의 행태를 비판해왔다.
표 전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이 명예훼손 성립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국민을 향한 겁박에 나선 것"이라며 "검찰과 법원의 판단 이후 무고 혐의로 국정원 측을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2009년에는 민간사찰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희망제작소 이사)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1~3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국가는 심히 경솔하거나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만 예외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은 최근에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새누리당의 불법 선거운동 및 국정원 개입 의혹을 제기한 진행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국민이 정부 업무를 100% 알 수 없기 때문에 비판에는 당연히 과장과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국가는 이를 해명하려고 노력해야지 비판하는 사람을 처벌하려 들면 안 된다"며 "특히 표 전 교수의 글은 주관적 평가로, 명예훼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유엔(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2010년 한국보고서에서 "어떤 개인도 국가, 정부 등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돼서는 안 되나 한국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만복 前국정원장 기소유예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고발됐던 김만복(67) 전 국정원장을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이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2010~2011년 저서와 인터뷰 등을 통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 과정 등을 공개했다가 고발됐는데, 검찰은 "회고 과정에서 누설된 것일 뿐 작심하고 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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