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인천공항 입국장. 배모(47)씨 행색은 초라했다. 3년 6개월간의 중국 도피 생활이 '화려한 꽃뱀'이었던 배씨의 과거를 무색하게 만든 듯했다. 이날 낡은 빨간색 점퍼 차림으로 입국한 배씨는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 2명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로 향했다. 배씨는 경찰에서 "너무 힘들어 자수하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 놨다.
2007년 13명으로 이뤄진 원정사기도박단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배씨는 국내 유명 골프 클럽을 찾아 다니며 돈 많은 남성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역할을 맡았다. 피해자와 내연 관계로 발전하면 배씨는 "골프여행을 가자"며 중국 산둥성 일대 호텔 사설도박장으로 유인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일당과 함께 도박을 시작하기 전 약을 탄 음료수를 피해자에게 먹이거나 미리 패를 맞춰 놓기도 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전문 도박꾼, 사설도박장 관리자 등의 역할을 맡았다. 일당은 도박을 하지 않은 피해자들을 성매매 업소로 데려간 뒤 일부가 공안 행세를 하며 "체포하지 않고 풀어주겠다"고 속여 돈을 빼앗는 등 온갖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농락했다. 배씨 일당이 지난 2007년 5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이런 수법으로 피해자 3명으로부터 뜯어낸 돈만 총 15억5,0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신고로 사기행각이 드러난 뒤 배씨의 도피행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기에 가담한 대가로 받은 3,400만원은 곧 바닥이 났고, 중국 칭따오 지역을 전전하며 보모를 하거나 김치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생활을 견디다 못해 결국 한국 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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