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개봉을 앞둔 '베를린'은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등 최고 스타들의 조합으로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독일 베를린의 쓸쓸한 잿빛 풍광을 배경으로 한국영화사상 가장 화려한 액션이 펼쳐진다. 북한에서 영웅 칭호를 받는 최고의 첩보원 표종성(하정우 분)은 베를린에서 통역관인 아내 련정희(전지현)과 함께 살며 첩보 활동을 한다. 북에서 감시 요원이자 핵심 권력자의 아들인 동명수(류승범)이 베를린에 오면서, 모종의 계략이 펼쳐지고 표종성은 자신과 아내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는 내용이다.
14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베를린 등 해외로케로 찍은 이 영화는, 분명한 자기 색깔을 지니고 최고의 액션 연출을 자랑해온 류승완 감독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 감독은 "촬영할 때부터 시사회를 마친 지금까지도 악몽에 시달리게 하는 힘든 영화였다"고 토로했다.
"해외 로케이션, 돈에 대한 책임, 스타들, 해외 스태프와의 공동작업 등 여러 가지가 겹쳤다. 영어도 못하는데 외국배우들은 또 끊임없이 뭘 물어본다. 현장에서 촬영이 잘못될까, 사고 날까 하는 게 악몽으로 나타난다. 한국 와서도 자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지 아이들이 깨우며 '아빠 왜 그래. 아빠가 차 빼라고 했잖아'묻더라. 전쟁터 나갔다가 후유증을 앓는 군인 같았다."
그의 B급 정서와 독특한 캐릭터 설정에 길들여진 팬들에게 이번 영화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정색하고 만든 정통 액션극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짝패'를 찍고 싶은데 '다찌마와리'를 원한다고 그걸 찍을 수 없다. 진짜 제 영화를 원하는 팬들이라면 제 행보 자체를 좋아해줬으면 고맙겠다. 팬덤 현상을 일으키는 감독이 되고 싶지 않다. 그저 영화 잘 만드는 유능한 감독이고 싶을 뿐이다. 영화의 본질에 다가서는 게 해가 된다면 제 이름도 버리겠다. 그게 맞는 거 같다"고 답했다.
"이래서 스타와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이번 영화에 출연한 스타 급들과의 경험을 높이 샀다. 특히 전지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북한 사투리 연습을 하는데 학습 능력이 가장 빨랐다. 그녀는 자기 '쪼'(버릇이나 고정된 연기 틀)가 없다. 매우 큰 장점이다. 물 같이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예전엔 그녀를 배우라기보다는 시대의 아이콘으로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 좋은 작품을 하고자 하는 열의가 컸다."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해온 동생에 대해선 "류승범이란 배우가 본질적으로 악한 역을 할 때 어떤 에너지가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동명성이란 역을 맡겼다. 시나리오 때부터 그를 생각하고 만든 캐릭터다. 제대로 된 악을 해보자란 생각에 현장에서 '베니치오 델 토로가 연기하는 조커'가 되어달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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