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22일 물가목표를 2%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때까지 무제한 금융완화를 실시키로 했다. 경기 부양을 주장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한 것이어서 일본은행의 중립성 훼손 논란은 물론 전세계를 상대로 환율전쟁의 불을 지폈다는 비난이 제기된다.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정부와 공조를 강화해 물가목표를 가능한 한 조기 달성하겠다”는 정부와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행이 명확한 물가 목표를 정한 것은 처음이며 지난해 1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금융완화를 단행한 것은 2003년 이후 9년 8개월만이다.
일본은행은 이에 따라 2014년부터 은행과 금융시장에서 월 13조엔 정도의 국채를 매입하고 대금을 지불하는 형식으로 자금을 풀기로 했다. 금융기관은 유입 자금을 늘려 추가 금리 인하로 연결시킬 계획이다. 일본은행은 이를 통해 기업이 공장 및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개인의 소비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재정자문회의 의장을 겸하는 아베 총리는 일본은행의 물가 목표 달성 상황을 정기 점검해 일본은행의 금융완화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하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난해에도 금융완화를 통해 46조엔을 풀었지만 물가는 0% 수준에 머물렀고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각국 중앙은행이 경상수지 흑자와 경기부양을 위한 노골적인 환율 절하 압박을 받으면서 독립성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물가관리라는 본연의 역할을 미룬 채 ‘돈을 풀라’는 정책적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하나의 행정부처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21일 프랑크푸르트 증시 신년회 연설에서 “헝가리와 일본의 새 정부가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을 압박하고 있다”며 “이것이 환율을 정치 쟁점화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경고했다. 바이트만은 “위기 타개가 중앙은행의 핵심 역할이 아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물가 관리로)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트만이 연설 제목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정할 정도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일본 등의 중앙은행이 통화 완화 목표치를 설정한 이후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정책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최근 “성장과 안정에 관한 한 환율이 중요하지만 이것(환율)이 ECB의 정책 목표는 아니다”며 ‘정책 환율’에 거부감을 표현한 바 있다.
중앙은행의 정부 예속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영국계 은행 HSBC의 스티븐 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1일 자 FT 칼럼에서 “통화정책이 금융 전문가만의 일이 아닌 정치적 사안이 됐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끝나가고 있다”며 “이를 ‘좋다’ 혹은 ‘나쁘다’는 이분법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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