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와 있다. 대도시의 겉모습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중심가의 고층건물과 백화점. 편의점과 커피체인점. 몇 군데 유적지와 관광 스폿. 나는 어디를 가도 대체로 심드렁한 편이다. 남산타워에도 안 올라가봤는데 동방명주 전망대는 뭘, 하며 지나치는 식이다. 맛집을 열심히 찾아다니지도 않고 쇼핑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종종 낯선 나라의 대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길을 잃을 자유를 얻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일단 정하곤 하지만, 목적지에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목적지를 찾지 못해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이 더 많다. 그게 좋다. 골목을 잘못 접어들거나 엉뚱한 지하철역에서 내려 여기저기 헤매다 보면 예기치 않게 마음에 남는 세계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색색의 빨래들이 전선에 줄줄이 걸려 있는 뒷골목의 낡은 아름다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스님에게 강매 당한 관음보살 묵주. 좋은 우연도 나쁜 우연도 여행지에서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렇게나 헤매도 상관없고 아무렇게나 마음이 들러붙어도 상관없는 자유를 내 삶의 터전에서 누리기는 쉽지 않다. 이번 여행에는 포켓 와이파이를 지참했다. 어디서든 인터넷이 연결되니 도대체 위치 파악이 안 될 때는 구글맵에 도움을 청한다. 사이버가이드를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다. 헤맬 일이 줄었다는 안도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든다.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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