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형준(작은 사진) 포스텍 화학공학과 석좌교수가 '기초과학을 통해 창업까지 한 IT 융합 미생물학자'라며 천종식(45)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추천했다.
동갑내기 천종식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미국 메릴랜드대 교정에서였다. 둘 다 막 박사학위를 마치고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시작하던 때였다. 나는 응용과학, 천 교수는 기초과학으로 연구분야는 달랐지만, 이후 십 수 년간 여러 경로를 통해 천 교수가 얼마나 뛰어난 연구성과를 거뒀고 이를 통해 어떻게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 전해들을 수 있었다.
생명과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분류학을 전공한 천 교수는 여러 생물 중에서도 특히 미생물의 일종인 세균에 집중했다. 천 교수가 다른 분류학자와 가장 다른 점은 컴퓨터 공학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에 컴퓨터를 적극 도입한 것이다. 그가 연구를 시작한 1990년대는 생물학과 컴퓨터공학을 융합하는 생물정보학이라는 분야가 일반화되기 전이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유전자 분석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덕분에 이제 생물정보학은 생명과학에서 가장 각광받는 분야로 떠올랐다.
천 교수는 세균분류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이를 처음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국제 학술활동을 펼치며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명함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2004년에 국제세균분류학회 공식 학술지의 부편집인에 임명된 것도, 1936년 미국에서 설립돼 세균분류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버기스매뉴얼(Bergy's manual) 재단의 이사로 임명된 것도 모두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었다. 학술논문도 150편이 넘게 발표했다. 그 가운데 2007년에 발표한 논문은 세균분류학 분야의 논문 인용지수에서 역대 세계 5위에 올랐으며, 국내 미생물학 분야에서는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기록됐다.
천 교수의 큰 장점은 단순히 학문적인 연구에 그치지 않지 않고, 이를 실용화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천 교수는 5년 전부터 바이오와 정보통신 융합을 통해 우리 몸에 있는 여러 가지 세균들을 정확하게 검출해 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대장이나 피부 속에 있는 수천 종에 이르는 세균을 정확하게 검출해 질병을 진단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상용화하기 위해 천 교수는 자신이 직접 벤처회사를 창업했다. 천 교수는 간혹 "기술 창업 지원이 체계적인 선진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20명이 넘는 직원과 연구원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천 교수는 기초과학에서 출발해 응용과학을 접목시켜 창업까지 한, 국내 과학계에서는 흔치 않는 경우다. 그가 앞으로 미래의 한국 과학자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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