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른바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대화록'을 보도한 한겨레신문 최모 기자를 도청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도청의 기준이 모호한데다 보도는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반론도 만만찮아 향후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고흥)는 18일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과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의 대화를 듣고 녹음해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최 기자를 불구속 기소했다.
최 기자는 지난해 10월 "최 이사장과 이 본부장 등이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이사장실에서 만났다"며 "이들이 MBC와 부산일보 주식을 매각해 대선을 겨냥한 부산ㆍ경남 지역 대학생 대상 선심성 후원사업을 하는 방안을 계획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MBC는 "도청 의혹이 있다"며 검찰에 최 기자를 고발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기자는 지난해 10월 8일 자신의 휴대폰으로 최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하는 과정에서 최 이사장이 통화를 끝낸 뒤 통화종료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않은 채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온 MBC관계자들과 말을 이어가자 이를 휴대폰으로 녹음한 혐의다. 최 이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대화 내용은 대체로 사실이나, 취지는 보도 내용과 다르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최 기자의 행동을 불법으로 본 이유는 최 이사장이 통화를 끊었다고 생각한 시점 이후 대화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은 당사자 간의 대화가 아닌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듣거나 녹음하는 경우 성립되고, 이렇게 얻은 정보를 공개, 누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입법취지에 따르면 상대방이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할 경우 엿듣지 말고 끊어야 하는데, 오히려 녹음을 한 만큼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도청의 요건에 해당해도 가벌성(可罰性)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이사장이 자신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연히 대화내용을 듣게 된 만큼, 도청장치를 동원한 경우와 다르게 처분해야 한다는 견해다. 김도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의도적으로 장치를 설치한 경우가 아니라 도청의 고의가 없는 상황에서 과연 기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최 기자의 행위를 통신비밀법 위반으로 보더라도, 위반 사유가 국민의 알권리 보호에 있었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수장학회와 문화방송이라는 공익 기관의 거취에 관한 정보를 우연한 기회에 취득한 기자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이를 보도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며 "우리 법 체계는 이런 공익성에 양해를 발휘하는 체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공익성이라는 보도목적을 고려해도 기자 본인이 직접 녹음한 만큼 면죄부를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다만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인 점을 감안해 구속이 아닌 불구속 기소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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