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복잡하다. 생각도 수만 갈래 흩어져있다. 그 속에서 내 삶과 내 존재는 쪼개지고 갈라진다. 그럴 때는 걷는 게 최고다. 걷는 건 두 지점을 나의 존재로 채우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의 선(線)이다. 흐트러질 수 없고 쪼개질 수 없다. 하나의 목적점을 향해 가는 나의 발걸음은 그래서 단순하고 단호하다. 때론 의도적으로라도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단순함이야말로 정교함의 궁극이기 때문이다. 그게 걷기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 단순함 속에 나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그 단순함은 지루하고 타성적인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이 사상(捨象)되는 간결함이고, 본질을 느끼는 정교함이다. 몸을 옮기는 내 다리의 주인으로서 뿐 아니라 생각의 주인이 되는 즐거움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록 간단한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기는 오늘날 우리네 사회의 성급하고 초조한 생활을 헝클어놓는 온갖 근심걱정들을 잠시 멈추게 해준다. 두 발로 걷다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 사물의 떨림들이 되살아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사회생활에 가리고 지워져 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자동차 운전자나 대중교통의 이용자들과는 달리 발을 놀려 걷는 사람은 세상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돌아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인간적인 높이에 서 있기에 가장 근원적인 인간성을 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브르통에게 걷기는 사물들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새로이 일깨워주는 인식의 한 방식이며 세상만사의 제 맛을 되찾아 즐기기 위한 보람 있는 우회적 수단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걷는 것은 모든 경험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돌아오고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사실에 무게가 실린다. 그것은 단순히 서로 떨어져 있는 공간의 두 지점을 이어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제어하지 못하던 삶의 가속도를 원래의 속도로 환원하는 일이다. 그래서 걷기는 세상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이며 그것도 제 맛을 되찾아 즐기는 행복한 우회적 수단이다.
혼자 걷는 것은 침묵의 길을 제 몸으로 누리는 일이다. 침묵은 인간의 마음속에 돋아난 쓸데없는 곁가지들을 쳐내고 그를 다시 자유로운 상태로 되돌려놓아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삶에 널려있는 잡동사니들을 말끔하게 청소하는 일이다. 침착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삶의 원심력을 회복하게 한다. 침묵의 두께 속에 가득히 깃들어 있는 서로 다른 소리들을 듣고 정리함으로써 날마다 제각기 다른 결로 세상과 삶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걷기에서 얻는 행복이다.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가장 정교한 의식이다.
삶의 속도가 때론 너무 가파르다. 생각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불행하고 삶이 황폐해진다. 항상 뛰어다닐 수는 없다. 진짜 필요한 가속도가 필요할 때에 정작 지쳐서 길을 멈춘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 조용히 걸어봐야 한다. 그 힘이 축적되어야 필요한 가속도를 마련할 수 있다. 누구나 삶의 진동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뛰는 삶을 다짐한다. 하지만 오히려 천천히 걸어볼 여유를 마련해야 한다. 걷기는 삶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 그리고 영혼의 속도를 조율하고 나를 회복하는 방식이다. 차분하게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이와 신분, 지식과 재산 따위에 상관없이 경험한다. 그 진동을 느낄 때마다 슬며시 밖으로 나가 걸어보는 건 어떨까. 다비드 르 브르통의 말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이면서. "산책은 걷기의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형식이다. 산책은 규칙적으로, 혹은 사정에 따라 우연히 실천하게 되는 개인적인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혼자 혹은 여럿이서 하는 산책은 숨을 가다듬기 위한, 시간을 길들이고 인간적인 높이에서 지각되는 어떤 세계를 기억하기 위한, 휴식, 말, 혹은 목적 없는 거닐음에로의 고요한 초대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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