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병이든 일찍 발견해야 환자도 덜 힘들고 치료 효과도 높다. 그런데 일찍 발견하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증상이 여러 번 나타났어도 사람에 따라 자각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몸의 변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주변에서라도 이상을 감지하고 알려주며 병원에 가보라고 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나 가족이 쉽게 판별할 수 있는 몸의 이상 신호를 이대목동병원과 서울시 북부병원의 도움으로 정리했다. 평소 알고 있으면 병에 좀더 빠르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눈 시력 장애, 뇌졸중 검사해야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가장 빨리 나타나는 부위 중 하나가 바로 눈이다. 안구 뒤쪽에 모여 있는 수많은 미세혈관이 체내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흰자위가 빨개지는 충혈 증상은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안구의 모세혈관에 피가 몰리면서 두꺼워진 상태다.
가장 흔한 원인은 안구건조증이나 바이러스성 결막염 같은 안과질환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적절한 치료를 받거나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흰색으로 돌아온다. 흰자위가 노란색을 띄면 피 속으로 흘러나오는 담즙 양이 늘었다는 신호다. 간이나 담도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심한 급성 간염일 때는 눈뿐 아니라 얼굴 전체나 손바닥도 노랗게 된다.
눈동자 속이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증상은 백내장일 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사물이 여러 개로 보이거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이면서 눈동자가 흐려지면 더욱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해 계속 한쪽 눈만 유독 잘 안 보인다고 호소하는 경우는 뇌졸중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영양 부족하면 손톱 희끗
손톱도 눈처럼 바로 아래에 가느다란 미세혈관이 그대로 비치기 때문에 건강상태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위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병, 흡연 등이 오래되면 혈관에 염증이 생겨 가늘어지면서 손 끝까지 피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한다. 혈액을 타고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런 영양결핍 상태나 빈혈, 만성 간염일 땐 손톱 색이 희게 변한다.
김정숙 이대목동병원 여성건진센터/건강증진센터 소장은 "최근 손톱이 희끗희끗하고 헐어 있는 젊은 여성을 종종 보는데,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에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는 적혈구가 정상 수치 이하인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심장이 온몸에 피를 더 많이 보내려고 무리하게 움직이게 된다"고 김 소장은 덧붙였다.
이 밖에 황달이 있거나 폐가 안 좋은 사람은 손톱이 노란색으로, 곰팡이에 감염되면 검은색으로 변한다. 손톱 아래쪽 반달 모양은 특히 소화기관의 건강을 보여주는 척도다. 반달이 작아지면 변비일 가능성이 크다.
폐 나빠도 창백한 얼굴
얼굴이 창백해지면 쉽게 빈혈을 떠올린다. 실제로 산소와 영양분이 부족해 피가 묽어지는 것이다. 입맛이 없고 속이 울렁거리거나, 몸이 나른하거나, 쉽게 숨이 차는 등의 증상이 함께 있으면 빈혈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 밖에 폐렴이나 폐암, 천식처럼 폐 기능이 떨어진 사람도 안색이 창백해질 수 있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 간에서 걸러지지 못한 불순물들이 얼굴 같은 다른 부위로 옮겨가면서 필요 없는 곳에 모세혈관이 자꾸 생긴다. 간이 나쁜 사람 얼굴이 푸르스름해지는 이유다. 담도 질환이 있으면 황달처럼 안색이 노래지고, 얼굴이 자주 붉어지면 혈액순환 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콩팥이 나쁜 사람은 얼굴이 거무스름한 색을 띠는데, 보통 피부가 얇아 혈액 색이 잘 보이는 눈 주위부터 색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크써클이 유독 심해졌다면 콩팥 건강을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
소변, 색깔보단 거품 확인을
콩팥 건강은 소변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소변을 다 보고 난 뒤에도 변기에 거품이 많이 남아 있다면 단백질 같은 몸에 필요한 성분이 콩팥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콩팥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특히 당뇨병을 비롯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소변을 더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소변 색깔이 달라졌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색깔은 얼마나 물을 마셨느냐에 따라 쉽게 달라진다. 물을 적게 마시거나 날씨가 더워 땀으로 몸 속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면 소변이 진해지면서 노랗게 보인다. 반대로 물을 많이 마실수록 점점 투명해진다. 운동을 심하게 하거나 고기를 많이 먹어도 소변이 노래질 수 있다. 김 소장은 "다만 물을 꽤 마셨는데도 소변 색이 탁하거나 진하면 비뇨기계에 염증이, 탁한 소변이 나오면서 아랫배가 아프면 방광염이 생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변에 피가 섞이는 혈뇨는 전립선염이나 신장암, 요로결석 등의 주요 증상이다. 특히 요로결석은 통증도 심하다.
탁하고 누런 가래, 감기 아닐 수도
감기에 걸렸을 때 나오는 가래는 대체로 흰색이다. 평소에도 기관지 내부에선 가느다란 털(섬모)이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 등을 걸러내면서 가래를 만들어내는데, 이 역시 흰색을 띈다.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점막이 좀더 자극을 받기 때문에 가래 양이 많아진다.
이와 달리 급성 기관지염이나 천식일 때는 무색투명한 가래가 나온다. 또 감기를 오랫동안 심하게 앓거나 호흡기로 세균이 침투하면 만성 기관지염, 폐렴, 폐결핵 등이 생기면서 가래 색이 점점 탁해지고 진해지며 누런색, 황갈색,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콧물도 마찬가지로 감기 초기엔 하얗다가 시간이 지나면 누렇게 변하곤 하는데, 이 때부터 보통 항생제를 처방한다.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면 젊은 사람은 결핵, 고령자는 폐암을 의심해볼 수 있다. 또 목에 가래가 끼어 있는 느낌과 함께 입 냄새가 심해지고 헛기침, 구역질이 자꾸 나는 경우는 역류성식도염일 가능성이 크다. 위의 소화액이 식도로 역류하면서 성대에까지 자극을 주면 쉰 목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심하고 낮이 되면 나아진다.
담즙 따라 다른 대변 색깔
소화기관을 두루 거쳐 나오는 대변은 특히 색깔로 소화기관의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데 좋은 근거가 된다. 배가 아프면서 대변이 초록색이면 식중독이나 급성 위염일 가능성이 높다. 김 소장은 "과다하게 분비된 담즙이 역류하면서 염증을 일으키고 대변 색까지 바꾸는 것"이라며 "반대로 담즙이 잘 나오지 않으면 복통과 함께 변이 회색을 띈다"고 말했다.
대변에 아예 검게 보이면 위장관 출혈일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출혈이 생기면 소장과 대장을 거치면서 일부 혈액 구성성분이 까맣게 바뀌기 때문이다.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건 치질을 비롯한 항문질환이나 장 출혈, 대장암 등의 신호다.
딸국질, 트림도 귀 기울여야
몸에서 나는 소리 역시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예를 들어 꼬르륵 하는 소리는 건 소화기관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위는 1분에 3회, 십이지장은 12회, 대장은 3~12회 정도 연동 운동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리가 너무 잦거나 복부 팽만, 설사 등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는 역류성식도염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 장염이 아닐지 확인해 봐야 한다.
"꺼억-" 하는 트림 소리는 냄새나 다른 증상이 없다면 건강에 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트림할 때마다 신물이 올라오거나 쓴맛을 느끼는 사람, 목이 답답하고 기침, 구역질까지 함께 하는 사람은 위나 십이지장궤양, 역류성식도염 가능성이 있다. 천식이나 축농증, 비염이 있어도 코가 목 뒤로 넘어가면서 트림을 자주 하게 된다.
수분 ~ 수시간 안에 멈추는 딸꾹질은 정상 생리 현상이지만, 48시간 넘게 계속되면 병일 수 있다. 일반적인 딸꾹질은 숨쉴 때 사용하는 횡격막 근육이 갑자기 수축하면서 성대로 들어오는 공기가 차단되면서 일어난다. 서울시 북부병원 가정의학과 전재우 과장은 "위염이나 늑막염, 복막염, 신경염, 뇌염, 폐렴, 알코올중독, 요독증, 간염 등이 일으키는 딸꾹질은 이와 달리 횡격막을 조절하는 신경기능이 손상돼서 생긴다"고 설명했다.
과로나 수면 부족이 계속되면 귓속에서 매미가 우는 듯하거나 보일러가 돌아가는 듯한 윙윙 소리가 난다. 이런 이명 증상이 2, 3일 쉬어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엔 귀의 염증이나 난청을 의심해 봐야 한다. 빈혈이나 갑상선 이상, 혈관성 종양 등도 가능성이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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