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지체장애인 박모(59)씨는 아들을 볼 면목이 없다. 경제적 이유로 얼마 전 아들이 다니던 대학까지 그만두고 월 100만원도 못 버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후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받던 수당 80만원(장애인수당 포함)마저 깎여 아들에게 생활비까지 타 써야 하는 형편이 됐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금 등으로 빚만 3,000만원 가까이 되지만 '부양의무제'는 박씨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부양의무제란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빈곤층이라도 직계 부양의무자가 일정부분 소득이 있거나 일정기준 이상의 재산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도록 한 조항. 박씨는 "동사무소에서는 멀쩡한 자식이 있으니 지원액을 줄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며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오히려 내가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17일 장애인들이 부양의무제, 장애인 등급제 등 '2대 장애인 악법' 철폐를 요구하며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을 한지 150일째가 됐지만, 누구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전만해도 당장 법을 개정해 줄 것처럼 했던 정치권은 묵묵부답이고, 정부는 예산이 없다는 핑계만 대고 있다.
장애인 100여명은 이날 휠체어를 타고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몰려갔다. 이들은 북과 소고를 두드리며 지난 대선 당시 장애인 부양의무제 개선을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앞으로 100여장의 엽서를 부쳤다. "더 이상 잘못된 제도 때문에 장애인이 고초를 겪고 죽어가는 일이 없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국회에는 부양의무제를 없애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상정돼 있지만, 논의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5조7,000억원의 복지 예산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제도 폐지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양의무제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다 보니 복지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제도를 완전 폐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신 장애인 노인 등 보호가 더 필요한 계층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소득 기준을 완화해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 85만 가구 중 장애인은 17만4,000가구로 부양의무제로 인해 수급 자격을 박탈당한 장애인이 상당수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양의무제는 현실적으로 가난한 부양의무자에게 또 다른 부담을 넘기는 꼴"이라며 "최저 생계만큼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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