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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글세

입력
2013.01.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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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금 안면이 있는 어떤 신문사의 K사장을 찾아간다. 그러나 거기서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거절을 당한다. 자신이 기거하는 사글세 방으로 돌아온 P에게는 그러나 두 가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주인의 집세 독촉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골 형이 부친 편지다. 그 편지에는 아들 창선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할 뿐 아니라 끼니도 이을 길이 없어…." 식민지 지식인의 비애를 다룬 채만식의 소설 의 한 대목이다.

■ 일제 강점기 소설에는 사글세에 얽힌 삶이 많이 등장한다. 사글세는 통상 몇 개월 치 목돈을 내고 매월 월세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삭월세(朔月貰)에서 나온 말이다. 전세는 우리나라 특유의 임대차방식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도입됐다는 기록이 있다. 개항으로 농촌인구가 이동하면서 서울인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전세는 임차인의 신원보증 기능이 있고 관리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8ㆍ15 광복 전 서울 인근에서만 이용됐으나 이후 전국적 대세가 됐다.

■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전세 가격이 오르면서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시장에서 집주인의 교섭력이 커져 월세가 늘어나는 것이다. 월세는 집주인에게 유리하고 전세는 세입자에게 유리하다. 통상 월세는 이자율이 월 0.6%로, 연리 7%를 넘는다. 시중금리가 4%에 못 미치는 것과 비교할 때 부담이 만만치 않다. 지금의 월세는 과거 사글세와 조금 다르다. 전세 가격이 오른 만큼만 월세로 전환하는 형식으로 보증부월세나 반전세라고도 한다.

■ 집과 빚이라는 글자에서 'ㅂ' 과 'ㅈ' 을 맞바꾸면 똑같아 진다. 집 문제를 잘못 다루면 빚이 될 수 있다는 세종대왕의 예지가 반영됐다고 억지를 부려 보겠다. 집이든 전ㆍ월세든 값이 오르면 서민에게 고통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전ㆍ월세 대책은 집주인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고 이자는 세입자가 납부하는 형식이다. 고심한 흔적이 보이지만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방식이라 걱정스럽다. 집주인, 세입자 모두 만족하는 공약으로 다듬어지길 바란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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