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노사간 갈등을 중재하고 타협할 수 있는 제도가 이미 존재한다. 노사정위원회다. 하지만 현재 노사정위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뇌사상태 위원회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직접 힘을 실어줌으로써 노사정위의 갈등조정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사정이 손을 맞잡고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의 접점을 찾지 않는 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사정위가 출범한 것은 IMF 구제금융이라는 초유의 국난을 겪던 1998년 1월. 이듬해 민주노총이 합의에 반발해 노사정위에서 빠지는 등 삐걱거림이 없지는 않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노사정위는 정리해고법 도입, 파견법 제정, 교원노조(전교조) 합법화, 복수노조 허용 등 굵직굵직한 합의를 이루고 제도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차츰 위상이 추락하더니, 이제는 '가끔 하는 회의체' 정도로만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현 정부는 공개적으로 "노사정위 같은 사회적 합의체제가 성공하기 어렵다"며 "노사정위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던 김대모 당시 중앙대 교수에게 위원장을 맡기고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노동 현안에 대해 침묵하는 등 노사정위의 힘을 빼는 데 노골적이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폭풍이 몰아닥친 2009년 2월 노사정위는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노사민정합의문'을 채택, 정규직들이 임금을 동결해 비정규직들의 고용을 유지시키고, 노측의 불법파업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고 공언했지만 이러한 합의는 말뿐이었다.
박근혜 당선인은 "일자리 만들기, 비정규직 보호, 노동기본권 강화 등 노사관계 주요쟁점에 대해 노사정위에서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하겠다"며 노사정위 강화를 공약했다. 하지만 인수위에 노사관계 전문가가 1명도 포함되지 않는 등 강한 실현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노사정위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갈등조정기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정권 초기에 대통령이 노사정위에 힘을 실어 노사정 각 주체가 합의 사항을 반드시 이행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1998년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실세인 한광옥씨를 위원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라며 "박근혜 당선인은 정권초부터 정치적 실세, 혹은 최소한 총리급 인사를 위원장에 앉혀 위상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라고 주문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합의가 이뤄져도 지켜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굵직한 현안들부터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쌍용차, 현대차 같은 현안에도 노사정위가 개입해 해법을 제시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며 "어떻게든 노사정위를 복원시켜 이해당사자들이 토론에 참여하도록 하고 가급적이면 사안마다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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