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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부 직원, 한국대사관에 "경매" 귀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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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부 직원, 한국대사관에 "경매" 귀띔

입력
2013.01.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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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전 유출된 호조태환권 10냥짜리 원판의 환수작업은 미국 정부 공무원의 제보로 시작됐다. 2010년 4월 워싱턴의 한국대사관 법무관실에 전화가 울렸다. 국무부에서 2년째 한국 업무를 담당한 셰리 할러데이였다. "한국에서 도난된 유물이 미국에서 매각되려 한다. 내가 도와줄 테니 당신이 한번 막아봐라."이종철 법무관은 전화를 받고 당혹스러웠다. 할러데이는 경매회사, 관련 수사기관까지 알려주며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는 "경매품에 한국 왕실물건도 있다"며"어떻게 한국 유물이 외국에서 공개 경매될 수 있느냐"고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할러데이가 알려준 미시건주 옥스퍼드의 미드웨스트 경매장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한국 유물로 보이는 130여점과 함께 호조태환권 10냥짜리 원판이 소개돼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병사 라이오넬 헤이스(사망)가 서울의 덕수궁에서 가져온 유물이란 설명도 있었다. 한국에서 몰래 들여온 유물이 틀림없었으나 경매날짜는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먼저 경매회사인 미드웨스트 대표 제임스 아마토에게 불법유출 유물일 가능성을 고지하고 경매중단을 요청했다. 한덕수 당시 주미대사는 문화재청에 유물의 긴급 감정을 의뢰했다. 문화재 위원들은 이례적인 사진판정을 통해 "대부분 청나라 유물로 가치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일부 유물은 환수할 가치가 있다"는 감정평가서를 보냈다. 대사관은 즉각 국토안보부와 법무부에 이를 보내 수사를 의뢰하고, 환수를 위한 한미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수사는 국토안보부 산하 도난유물 조사 및 환수 전담반이 있는 국토안보조사팀(HSI)에 맡겨졌고, 카운터파트인 한국 경찰청도 환수작업에 가세했다.

환수작업은 난항이었다. 경매가 강행되면서 유물이 흩어졌고, 수사당국도 사건 진척이 어려워지자 난색을 표했다. 대사관은 호조태환권 원판을 3만5,000달러에 낙찰 받은 뒤 잔금 1만달러 결제만 남겨두고 있던 재미동포 윤원영씨를 접촉, "도난 유물이니 매입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이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2년째 미궁을 헤매던 지난해 7월 뜻밖의 호재가 날아들었다. 법원이 경매회사 미드웨스트에게 구매자 정보공개를 명령한 것이다. 국토안보조사팀은 이후 화폐전문가로부터 호조태환권 원판의 진품 감정을 받고 한국 반환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불법 유물임을 알고도 낙찰받은 윤씨를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아내면 원판을 압류해 한국에 돌려준다는 계산이었다. 불법 반입된 문화재를 해당국가에 돌려준다는 원칙에 따른 조치이기도 했다. 한국 당국도 윤씨 주변을 탐문하는 등 공조체제를 가동하면서 이달 9일 윤씨가 전격 체포됐고, 지금은 재판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양국이 3년째 공들이고 있는 원판 환수 시점은 현재로선 미지수다. 윤씨가 낙찰 시점에 불법 유물인줄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재판이 길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유죄를 인정하면 원판은 한국에 조기 반환될 수 있다. 이는 또 한미 공조로 국유재산이 환수되는 첫 사례여서 미국에 밀반출된 다른 유물을 찾을 법적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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