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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꼭 쓰여야 하나? 차 디자인하다 문득 회의감 좀 더 열린공간 뛰어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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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꼭 쓰여야 하나? 차 디자인하다 문득 회의감 좀 더 열린공간 뛰어들었죠"

입력
2013.01.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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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도 축구장도 되는 'artclub 1563' 갤러리질문·타협해가며 룰 만들어 가는 과정 작품화주류들의 폄하시각 아랑곳 "현대미술서 빠질 수 없는 작업"

지난 14일 개관시간인 오전 10시를 조금 지나 서울 서초동의 비영리 갤러리 'artclub1563'에 들어섰다. 실내 농구장처럼 빈 공간에 공 몇 개가 여기저기 놓인 전시장 안에서 돼지 네 마리부터 찾았다. 전시 안내자료에 등장하는 돼지 모습이 꽤나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없네. 잭슨 홍(본명 홍승표ㆍ42)의 개인전 '13BALLS'에는 축구공, 농구공, 배구공, 야구공 등과 함께 일렬종대로 힘차게 걸어가는 돼지 조각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이 네 번째네요. 깨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관람객들이 던지고 노는 공에 맞아 여러 번 깨졌다가 드디어 엊그제 박살이 났거든요."

갤러리에서 예상하지 못하고 맞닥뜨린 전시물의 '부재'는 설치미술이나 개념 또는 관계적 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전시에 관객이 얼마나 열띠게 참여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작은 실내 그라운드 바닥에는 야구장, 농구장, 배구장 등에서 본 적이 있는 하얀 경기장 구획선이 중첩해 그려져 있다. 여러 종류의 공과 함께 농구대에 하키 골대와 스틱, 야구방망이까지 있으니 이곳은 농구장이면서 배구장이고, 야구장이면서 하키 그라운드다. 관람객들은 거기서 공을 던지고 차고 때리며 논다.

룰은? 특정 경기장을 연상하게 하는 선이 있으니 없는 것도 아니고, 한 가지 경기장이 아니니 있는 것도 아니다."처음엔 쭈뼛쭈뼛하다 그냥 공 던지고 놀다 가는 사람이 있고, 어떻게 경기를 해야 할까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몇 사람이 같이 와서 자신들이 정한 룰에 따라 경기를 하는 그룹도 있다." 잭슨 홍은 기존의 룰을 활용해 관람객이 그 위에서 열린 "질문"과 "타협"을 해가며 새로운 룰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작품화했다. 기발한 공간 디자인의 힘이 전시장을 역동적이면서 창조적인 공간으로 만든다.

잭슨 홍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였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삼성자동차에 입사해 2년 정도 자동차 디자인을 했다. 하지만 "만들어 놓고 혼자 흡족해 하는 스타일"인 그는 "수만 명이 쓸 것을 전제로 해서 합의된 가치나 기능을 정리하는 방식"이 불편했다. 그래서 비평적 디자인(제품으로 쓰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디자인)에 눈을 돌렸다가 아예 "더 열린 공간에서 그런 작업을 해보자"고 미술작가의 길을 택했다.

몇 차례 그룹전을 거친 뒤 'Mechanic Beasts and Fire Wars'(2005년)을 시작으로 'Upset'(2006년) 'Unsetting Chairs'(2007년)'Design for the Real World'(2008년) 등 해마다 거의 한 차례씩 열어온 개인전에서 그는 책상, 의자, 마스크, 간판 등 사물을 활용해 "거기에 숨겨진 요소나 욕망"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작가 3인에 드는 등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디자이너 출신인데다 작품에 디자인적 요소가 적지 않아 그의 작업은 '디자인아트'로 불린다. 디자인을 낮춰 보는 주류 미술인들의 용어다. 미술시장에서도 이런 작업은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 장르에 비하면 분명 '마이너'다. 하지만 그는 "현대미술 기획전을 한다면 빠질 수 없는 작업일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는 이미 주류 대접을 받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강의를 다니다 보면 이런 작업에 흥미를 가진 후배 작가들이 적지 않은 걸 발견한다며 그가 덧붙인다. "'일기장작업'처럼 자신만 아는 이야기로 끝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비주류 장르를 주류로 만들어가는 작가의 역량은 이런 작업 태도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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