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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역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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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역사의식

입력
2013.01.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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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문 앞. 10여 명의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살피고 있었다. 고려대 서관 시계탑 바늘이 오전 10시 30분으로 다가갈수록 20대 남성들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졌다. 이들은 인터넷 용어로 속칭 '현피'를 보기 위해 온 구경꾼들이다. 현피는 '현실'의 앞글자와 'Player Kill'의 앞 글자 'P'의 합성어로 온라인상에서 싸움이 원인이 돼 현실에서 주먹다짐을 벌이는 현실결투를 뜻한다.

발단은 지난 주말 한 영화다운로드 사이트에서 '태주니'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5ㆍ18 광주폭동'으로 규정하면서 비롯됐다. 아이디 'JJKA'를 쓰는 네티즌이 이를 반박하면서 비난과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서로 고대생이라고 밝힌 두 네티즌은 "얘기가 안 통하니 만나서 '맞짱'을 뜨자"고 약속했고 이들의 현피 소식은 다른 사이트로 퍼져 구경꾼까지 모여든 것이다.

이날 광주폭동이라고 규정한 이의 불참으로 불상사는 없었지만 일부 1020세대의 현대사 무지와 왜곡된 인식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각종 포털사이트 지식인 검색에는 민주주의의 전환점이 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폭동이 아니냐"는 질문이 적지 않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전땅크'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탱크를 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말로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고 정치 민주화를 달성한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뜻한다. 나아가 광주 유혈진압은 계엄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로서 당연한 선택이라는 식이다. 상상을 초월한 부패정치와 폭압정치에 치를 떨며, 이에 항거해 6ㆍ10항쟁 당시 거리를 메웠던 기성세대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인식이다.

더욱이 전 전대통령은 1995년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1심에서 사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돼 사법적 평가도 이뤄졌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 또한 1990년 법률로써 피해자의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현대사에 대한 반 역사적 이해는 이것 만이 아니다. 군사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 유린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삼청교육대에 대해서도 일부는 "최근 늘고 있는 강력 범죄의 유일한 해결책은 삼청교육대 부활"이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일부 1020세대의 역사의식 부재는 2009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 근ㆍ현대사 교육이 대폭 축소된 부작용이라는 교육현장의 분석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극우세력의 편향된 인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탓도 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전공)는 "광주민주화운동은 진보ㆍ보수를 떠나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가치 존중 등 인류 보편의 가치에 비춰봐도 사회적 합의와 평가가 끝난 사안"이라며 "최근 1020세대 사이에서 그릇된 역사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안타까워했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에 밀려 현대사 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민주시민을 키워내야 게 기성세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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