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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의 거장 소설가 토마스 핀천… 대표작 '중력의 무지개' 국내 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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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의 거장 소설가 토마스 핀천… 대표작 '중력의 무지개' 국내 초역

입력
2013.01.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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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20세기 최고의 소설가중 하나인 토마스 핀천(76)의 대표작 (새물결 발행)가 국내 초역 출간됐다. 아르헨티나, 러시아, 일본 등 전세계를 배경으로 현대 사회 문제를 과학과 연결시킨 이 소설은 핀천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율리시즈'로 불린다. 1974년 미국 최대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작가가 시상식장에 코미디언을 대리수상자로 보내 유명세를 탔다.

핀천의 또 다른 걸작인 '49호품목의 경매'를 번역했던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메시지가 많고 무거운 소설이라 국내 소개되지 못했지만, 현대 영미문학을 논할 때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 과학과 문학을 접목시킨 융합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전공자들조차 난해하다고 꼽는 핀천의 이 소설은 카이스트 수학과 출신의 엔지니어 이상국(43)씨가 번역했다. 이씨는 소프트웨어회사인 에어플러그 기술이사로 일하면서 과학소설을 습작하고 있다. 10여 년 전 소설의 판권이 국내 팔리기 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영미문학산책'에 이 소설의 일부를 꾸준히 번역 게재했고, 이를 눈 여겨 본 출판사가 이 씨와 번역 계약을 맺었다. 조형준 새물결 주간은 "과학, 물리학 용어가 많아 문학전공자보다 이공계 번역가를 찾았다. 번역 계약 후에도 5번 번역을 완전히 바꿀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라고 했다.

이씨는 "길게는 한 문장이 5쪽에 달하는 만연체를 쓰는데다 과학 용어, 역사적 맥락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 것이 핀천의 특징이다. 작가와 연락하지 못해 소설적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철저한 은둔형으로 뉴욕에 사는 것으로 추정될 뿐 어디에 사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고,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고 사진 촬영도 하지 않는다. 공식석상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핀천은 2004년에 만화영화 '심슨'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낸 적이 있을 뿐이다. 이 때에도 만화영화 속 핀천의 얼굴은 종이봉투로 가린 모습이었다.

이씨는 "전 세계 핀천 마니아들과 이메일로 연락하며 꼬인 문장을 하나씩 해결했는데 그럼에도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팬들조차 의견이 분분한 문장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공인 수학 외에도 물리학, 컴퓨터 기술 등이 작품 속 중요한 상징으로 쓰여 따로 공부를 했다. 주석을 달아야 할 만큼 복잡한 과학, 군사 용어, 역사적 맥락은 최대한 문장에 녹였지만 인터넷 사이트 'Pynchon Korea'(https://sites.google.com/site/pynchonkorea/junglyeog-ui-mujigae)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보완할 계획이란다. 국내 처음 출간된 이 소설은 2권 한 세트가 소설집 최고가에 해당하는 9만9,000원으로 책정됐다. 조형준 주간은 "번역 기간과 비용에 상당액이 투자 된데다 작가 지명도에 비해 대중성이 적다고 판단해 700부만 찍었다"고 말했다.

'중력의 무지개' 는 이념·민족주의·테러리즘…역사의 폭력적 전개와 인간의 숙명·자유 담겨

소설의 제목 '중력의 무지개'는 대포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지구의 중력이 대포를 땅으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지금 우리를 잡아당기는 것은 좌우 이데올로기와 제3세계 민족주의, 민족주의로 가장한 테러리즘 등이며 이런 '중력의 무지개'로부터 벗어나 하늘로 솟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은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의 V2 로켓의 공격하에 놓인 런던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로켓의 포물선 궤적을 추적해가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의 폭력적인 전개와 인간의 숙명, 자유에 대해 말한다. 주인공 슬로스롭은 V2의 탄착 지점을 알아내는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에 대한 정보가 철저히 이용당하고 감시 당한다는 사실에 분개한 그는 근무지를 이탈해 어떠한 형태의 선택과 제한, 규정이 없는 '지대(Zone)'로 도망치기에 이르고, 자신에게 행해진 과학실험의 실체를 확인한다. 자신에게 '이미폴렉스 G'라는 플라스틱성분이 주입되어 있으며, 이것이 또한 로켓의 제조에도 사용되고 있었다. 이로써 자신의 기이한 능력은 현대 과학맹신주의와 비인간적 물신주의가 만들어놓은 결과물임을 깨닫는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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