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도 뮤지컬 전문극단을 만들면 어떨까”
지난 2011년 4월 부산의 젊은 연극인 3명이 동시에 몸담고 있던 극단을 떠나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각자 주머니를 털어 수영구 망미동에 허름한 사무실을 얻은 뒤 스스로 페인트를 칠하며 가까스로 연습실을 꾸몄다. 고심 끝에 내 건 극단명은 ‘끼리 프로젝트’. 무리 지어 살며 서로를 보호하는 코끼리처럼 연대정신을 잊지 말자는 의미였다.
이 ‘겁 없는’ 청년들은 극단 ‘연희단거리패’(연출 이윤택)에서 10년 넘게 무대에 섰던 변진호(33),∙홍선주(34 여),∙서승현(33)씨였다. 각각 연출, 극본, 기술∙안무 등을 담당하며 당차게 첫 발을 내디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뮤지컬은 음향장치, 무대미술 등 면에서 연극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필요했지만 딱히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부산문화재단 등 관련 단체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활동경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정공법을 선택했다. 밤 새워 의상을 만드는 등 제작비를 최대한 줄이는 노력 끝에 동래읍성역사축제에서는 창작 뮤지컬 ‘외로운 성’을, 김해 가야문화축제에서는 창작 뮤지컬 ‘여의와 황세’를 연이어 무대에 올렸다. 당시 받은 지원금은 나눠 갖지 않고 모으는 열정을 보였다.
그 사이 단원들도 늘어났다. 특이한 건 ‘끼리 프로젝트’에는 연극영화과 출신 단원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오직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은 꿈을 간직해 온 대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2달 간 맹훈련을 시킨 뒤 무대에 올렸다. 이 후 80여회의 무대를 갖는 동안 단원들은 11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의 도전정신은 뮤지컬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부산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8월 수영구 광안동의 청춘나비아트홀에서 무대에 올린 창작 뮤지컬 ‘춘향YO’는 첫날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5,000여만원이 소요된 제작비는 앞서 모은 돈으로 충당했다.
못생긴 춘향이 첫눈에 반한 몽룡을 차지하기 위해 미모가 뛰어난 하녀 향단을 이용한다는 설정으로 고전 ‘춘향전’을 상상력으로 각색해 현대인에게 만연한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었다.
관객들의 호응 속에 같은 해 11월 가온아트홀에서의 앙코르 공연은 관객 점유율 95%를 달성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각색을 맡은 홍씨는 “외모 지상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며 “올 여름 대구에서 열릴 국제뮤지컬 페스티벌을 목표로 맹 훈련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래나 기술만 화려할 뿐 외국의 유명 공연을 베껴 관객에게 감흥을 주지 못하는 뮤지컬보다 우리의 말과 이야기로 소통하는 공연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끼리 프로젝트’는 신년을 맞아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청춘나비아트홀에서 ‘춘향YO’를 다시 한번 무대에 올린다.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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