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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요구하는 노조에 회사는 정문 봉쇄… 답답한 평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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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요구하는 노조에 회사는 정문 봉쇄… 답답한 평행선

입력
2013.01.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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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봉아~ 의봉아~, 밥 올린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박두원(34)씨가 30m 위 철탑 농성장에 대고 소리쳤다. 밧줄에 매달린 2인분의 점심식사는 곧 허공을 가르며 천막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회용 비닐에 담긴 현미밥 한 주걱씩과 북어국 2,3국자가 점심식사의 전부다. 현대차의 인사발령에 따랐다면 정규직 직원으로 첫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인 9일,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 최병승(37)씨는 현대차 울산3공장 인근 송전탑에서 천의봉(32)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과 함께 85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갔다. 대법원 판결을 받은 자신뿐만 아니라 불법 파견 비정규직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요구다.

고공농성에 노노갈등으로 번져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10년째다.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1만 여명 전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후, 소송을 제기한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는 두 번이나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을 인정받았지만 지금 그는 생산라인이 아닌 송전탑 농성현장에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사측-정규직 노조-비정규직 노조 3자가 특별교섭을 시작했지만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됐을 뿐이다.

사측은 법에 따른 전환이 아니라 신규채용을 통해 사내하청 비정규직 6,800여명(노조는 8,500명 주장) 중 3,500명만 채용키로 제안하고 지난달 31일부터 423명에 대한 채용절차를 개시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전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신규채용 절차를 거부했지만 실제로 지원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5,400여명에 달했다.

이번 신규채용을 "사측이 노노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 오왕식(53)씨는 "채용에 지원한 비정규직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자신의 권리를 왜 스스로 포기하느냐"고 반문했다. 박현제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은 "신규채용이 되면 근속과 (정규직으로 인정되면 받을 수 있는) 체불임금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데 회사는 이번 신규채용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비정규직을 겁박하고 있다"며 "회사가 이 문제를 질질 끌면서 비정규직을 지치게 해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신규채용에 지원한 A씨는 "2010년 대법원이 최병승씨에 대해 직접고용 대상이 맞다는 판결이 났을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고, 노조에 가입해 파업에 동참했다가 징계도 당했다. 하지만 결국 노조원은 징계만 받고 비노조원은 혜택만 받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허탈함과 박탈감만 심해졌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조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고 피로감도 누적됐다"는 그는 "파업이나 법정싸움으로 가지 말고 하루 빨리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연대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상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삼아 온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 문제는 '남의 일'일 뿐이다. 정규직 노조 관계자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일에만 매달린다고 불만을 표하는 조합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별교섭 중 정규직 노조가 사측 제안을 일부 수용하자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달 27일 특별교섭을 막고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정규직 노조는 파업과 집회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회사는 집회가 끝날 때까지 본관 현관문을 걸어 잠근 채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대화와 소통이 막힌 상태에서 노동자들 사이에는 "사측이 신규채용 응시자들에게 불법파견에 대해 더 이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권리 포기 각서'를 쓰도록 해 불법 파견 문제를 이대로 넘기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공장벽면에 적힌 '좋은 환경 좋은 차'라는 표어가 무색할 정도로 현대차 울산공장의 근무 환경은 위태위태하기만 했다.

배 대신 정문 땜질하는 한진중공업

같은 날 밤 부산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는 400여명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ㆍ복직 노동자들과 그 가족,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지난달 21일 158억원에 달하는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노조 탄압에 대한 분노를 유서에 남기고 자살한 최강서(당시 35세)씨를 추모하기 위한 촛불집회였다. 노조 측은 손배소 철회 및 유족에 대한 지원 등을 논의하자며 세 차례나 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 이에 유족과 노조는 최씨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회사 정문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급기야 이날 사측은 회사 정문을 철판으로 용접했다. 노조 측은 "우리가 회사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려고 2중, 3중의 철문을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이제 용접까지 하며 막고 있다"고 말했다. 사측은 최씨가 노조 사무실에서 자살한 이후 지난해 11월 복직한 노동자들까지 회사 출입을 막고 있다. 천막 농성장을 지키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사측은 법적 권리인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고 정문까지 용접하며 모든 것을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하다"며 "왜 대화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1년 만에 겨우 복직했지만 복직 당일 휴직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한진중공업 동료 노동자들과 부산 시민들에게 손배소 철회 요구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천막을 지키던 한 노동자는 "사측이 계속 이런 식으로 할거면 아예 회장이 바뀌거나 회사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일터로 돌아가지 못해도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있던 그 노동자의 절규에서는 회사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회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노사가 다시 테이블에 앉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글ㆍ사진=울산 부산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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