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인정하고 신규채용 중단하라!"
현대자동차에서 해고된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37)씨가 8년간의 법적 싸움 끝에 드디어 현대차 정규직 직원으로 인사 발령 난 9일. 최씨는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탑 위 고공농성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300여명은 공장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 10년째 같은 요구를 하고 있었다. '불법 파견 인정, 정규직 전환'. 사측의 첫 정규직 전환 결정에 대한 기쁨은 없었다. 지난해 2월 대법원이 최씨의 사용자는 현대차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사측은 최씨를 제외한 약 7,0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있다. 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 대신 3,500명만 신규채용하겠다는 사측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는 특별교섭을 거부하고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법은 실효성을 잃은 상태고, 노사 간 대화는 실종됐다. 남은 것은 허공을 향한 고공농성장의 외침과 불신뿐이다.
극한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노동현장은 현대차만이 아니다.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 됐다가 복직한 최강서씨가 사측의 노조 탄압에 대한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자살했지만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를 놓고 노사가 맞서 13일로 24일째 장례도 못 치르고 대치 중이다. 쌍용차는 최근 무급 휴직자들의 전원 복직이라는 진전이 있었지만 복직대상에서 제외된 해고자들은 2009년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55일째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에 노동자들의 절망은 깊어 지난 한 달 동안 4명이 세상을 버렸다. 최강서씨의 자살에 충격 받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 이모(41)씨,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의 활동가 최모(40)씨가 22일, 25일에는 한국외대 노조지부장 이모(47)씨가 자살했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 측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노동 현장에서 대화와 타협, 법 질서가 모두 붕괴됐지만 누구 하나 갈등 조정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마저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서 사회의 갈등 조정 시스템은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보수 정권의 무관심이 지속될 경우 사회의 불안을 더욱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우리 사회는 노사관계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이 너무 격화돼 있는 상황"이라며 "노사관계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데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사간 극심한 힘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 갈등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부산=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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