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기(詭寄)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 당ㆍ청나라 시절 논밭을 소작인이나 가난한 사람의 이름으로 바꾸어 탈세를 한다는 의미다. 조선시대에는 여결(餘結), 은결(隱結)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탈세를 목적으로 토지 대장인 양안(量案)에 부분적으로 올리지 않은 토지의 결수(結數), 전세(田稅)의 부과 대상에서 부정ㆍ불법으로 누락시킨 토지를 각각 말한다. 예전부터 차명으로 토지를 소유하거나 재산을 은닉해 세금을 피해가는 것이 흔한 수법이었고, 이를 찾아내려는 국가의 노력도 상당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숨겨진 세금을 걷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야심찬 공약이다. 30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낸 뒤 매년 세금을 걷어 5년간 총 134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복지재원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인데 목표 수치상으로는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취지에는 공감이 간다. 지하경제는 사채놀이 범죄 절도 마약거래 매춘 등의 불법행위는 물론이고, 기업의 비자금 조성 등도 해당이 될 수 있다. 모두 세금당국의 세원에 포착되지 않는 것으로 그 규모가 우리나라의 1년 예산 정도 된다니 놀랍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안경점에 안경을 사러 갔을 때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구매를 할 경우 10%를 할인해주겠다는 제의를 받을 때가 있다. 이 때 현금으로 할인을 받아 구매를 하면 지하경제를 이용한 것이 된다. 그래서 지하경제를 현금경제(cash economy)라고도 한다. 사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정권 교체기마다 자주 이슈화 되어왔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실시된 금융실명제도 지하경제의 자금을 지상으로 끌어올렸던 성공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하지만 금융실명제로 각종 가ㆍ차명계좌를 통해 공식 경제부문에 참여하고 있던 자금을 지하경제의 영역으로 다시 숨게 만드는 부작용도 지적된 바 있다.
LG경제연구원의 배민근 책임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1970년대 말 정점이었다가 1980년대에는 평균 37%, 1990년대 24%, 2000년 이후는 20% 등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기업 투명성 증대,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 전자상거래 확산 등으로 자영업자의 소득이 노출되어 세원으로 잡히게 되면서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지하경제 규모는 국민의 소득수준과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저개발국들의 경우 지하경제 규모가 30~40%를 넘는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터키나 멕시코는 30%를 넘고 있다. 반면 독일 핀란드 덴마크 등은 16~17% 수준으로 나타난다.
국세청이 12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할 내용에 따르면 유사휘발유 단속강화, 역외탈세 방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거래정보공유 등을 통해 징세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세수가 부족한 시점에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탈세를 막고 세수의 기반을 넓히겠다는 계획이지만 세원포착을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무차별적으로 징세를 할 경우 자영업자나 서민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 물론 세원포착 노력을 일상화하는 것은 세정당국의 기본적인 임무겠지만 이를 통해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 재원의 상당부분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 증세가 뒤따르지 않으면 박 당선인의 공약실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용섭의 에 따르면 우리나라 세금은 직접세 비중이 간접세 비중보다 과도하게 높아 세금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직접세인 소득세의 경우 소득이 높을수록 많이 낸다. 반면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의 경우 소득에 상관없이 내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 불리하다. 따라서 박 당선인이 서민 부담을 줄이면서 복지공약을 실천하려면 직접세를 늘리는 방안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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