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아셈 개최 계기로 성장세… 내세울 만한 연례 박람회 빈약
IT·자동차 강국 명성 무색… 정부·지자체 "일단 짓고 보자" 뿐
12곳, 1년중 8개월은 개점휴업 시설낙후·운용기법 부족도 문제
지난해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행사를 찾은 외빈은 53개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ㆍ수행원 등 총 1만여명에 이른다. 전세계 192개 회원국이 참석하는 유엔총회를 제외하면 한 국가에서 열린 정상회의 중 최대 규모였다. 당시 외신들은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에 이어 한국 의 컨벤션 산업 능력을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전시회 국제회의 등 한국의 컨벤션 산업이 과거와 달리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 세계 국제회의 통계기관인 국제회의연합(UIA)이 발표한 개최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2006년 15위(185건)에서 2011년 6위(469건)로 올라섰다. 국제규모의 컨벤션센터 역시 2000년 코엑스 한 곳에서 현재 부산 벡스코, 송도 컨벤시아, 고양 킨텍스 등 전국 9곳으로 늘었다.
한국에서 컨벤션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당시 아시아ㆍ유럽 정상 모임인 '아셈(ASEM) 회의'개최를 계기로 2005년 부산 아ㆍ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지난해 여수박람회 등 각종 행사를 유치해 성장을 거듭했다.
정부도 1996년 국제회의산업육성법을 제정해 제도적 틀을 갖췄다. 당시 정부는 관광산업 가운데 국제회의 분야가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만큼 수익성이 일반 관광보다 높고 마케팅 효과가 큰 점에 주목해 관련법을 만들었다.
이후 정부는 2008년 전시산업발전법을 제정하고 2009년 마이스(MICE)산업을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선정하면서 국내 컨벤션 산업을 키우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MICE는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약어. 국제회의는 물론 전시·박람회를 통칭하는 보다 포괄적 개념이다.
하지만 국내 컨벤션 산업은 화려한 외양과 달리 내실이 없다는 지적이다. 양적인 면으론 세계 톱5를 노리지만, 질적인 면에선 갈 길이 멀다. 세계적 IT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나라이자,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IT강국으로 평가 받는 우리나라이지만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나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는 버금가기는커녕 변변한 국제IT박람회조차 없다. 또 세계 5위 자동차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서울모터쇼나 부산모터쇼는 아시아에서조차 '변방 전시회'로 취급될 정도다.
문제는 전시회장만 많다는 데 있다. 전국 대규모 전시회장은 총 12곳이지만 이 가운데 주변 숙박 음식 쇼핑시설이나 지하철 등 교통 시설이 편리한 곳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나 부산 벡스코 정도이다. 그렇다 보니 나머지 지역의 전시회장 대부분은 1년 중 전시회가 열리는 기간이 120일 미만이고 8개월은 텅 빈 채 노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대규모 전시회를 유치할 능력은 안되면서 무조건 컨벤션센터를 지어 놓은 지자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업계 관계자는 "선거때마다 선심성 공약으로 컨벤션센터 건립이나 대규모 전시회 유치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데 컨벤션센터를 지어놓고 정작 전시회를 유치하지 못하다 보니 노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낙후한 시설과 운용기술 부족도 문제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는 설립된 지 10년이 넘도록 시설 개선을 거의 하지 않았다가, 2008년 전세계 재외 동포들이 모이는 제 7차 세계한상대회를 무리하게 개최한 뒤 규모를 축소해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부산 벡스코도 운용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국제모터쇼를 자체 기획했다가, 완성차에만 지원을 집중하면서 주요 부품업체들이 모두 불참해 중요한 구매상담실적이 기대 이하를 기록했다.
한국 마이스협회 오성환 회장은 "대규모 전시회장이 우후죽순 생겨 서로 경쟁하는 바람에 수익성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선 지자체나 정부가 적절한 지원과 발전 계획을 마련해야 할 때"라 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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