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관현악과 4학년 임모(23)씨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한숨을 돌렸다. 예ㆍ체능계 취업문이 유난히 좁아 졸업을 1년 미뤘는데, 최근 학교가 만든 상설 관현악단 단원으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한 달여 간 단원들과 공연을 연습한 그는 "국내 교향악단이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이 연주 시범을 보이고, '오디션 볼 때는 지정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는 등 조언을 아끼지 않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1년간 실력을 갈고 닦아 꼭 취업하겠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대학 최초로 졸업생과 재학생 80명으로 구성된 상설 관현악단 '이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 10일 신년 음악회를 가졌다. 수년 째 청년 취업난이 전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요즘, 인문계 이공계 등의 일반학과 보다 취업률이 더 낮은 예ㆍ체능계열 학생들을 위해 학교가 발벗고 나선 것이다. 채문경 이대 음대학장은 "외국 명문대에 유학까지 갔다 와도 취업이 안 돼 전전긍긍하는 음악 전공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더 많은 공연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상설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며 "예ㆍ체능계 취업난 해소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상설 오케스트라는 학생들의 취업을 걱정하던 음대 교수와 동문들이 뜻을 모아 지난해 11월 구성했다. 참여의사를 밝힌 졸업생과 교수가 추천한 재학생 중 실력 등을 심사해 졸업생 47명, 재학생 33명을 최종 선발했다. 이들은 신년 음악회 개최를 목표로 지난해 12월부터 하루 3시간씩 연습했고, 이날 창단을 기념해 교내 대강당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이다. 학교 측은 "고려대(12일)와 경기 오산문화예술회관(30일)에서도 음악회를 개최한다"며 "앞으로 연 3회 정기연주회와 연 2회 지방순회 및 해외 공연을 열어 단원들이 연주할 기회를 가능한 많이 가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모(24ㆍ관현악4)씨는 "4년간 공부해도 실력을 뽐낼 기회가 없는데 학교가 무대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당장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채 학장은 "연주회를 열 때마다 수익금으로 일정액을 지급하고 있다"며 "2월 중으로 후원회를 발족해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지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대는 또 취업난 해소를 위해 올해부터 음악지도 사회적 기업도 운영하기로 했다. 학교 관계자는 "토요일에 초ㆍ중학교 학생들을 대학으로 불러 음악을 가르치는 사회적 기업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신청했다"며 "올해 3월부터 본교 출신 졸업생들이 악기 별로 학생 4~5명씩 모아 교육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ㆍ체능계 취업의 좁은 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교향악단에서 8년째 활동하고 있는 A씨는 "각 대학이 졸업 후 일자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사회적 수요를 넘어설 정도로 음악대학 정원을 늘려 실업자를 양산해 놓은 문제가 더 크다"며 "정원 축소 등 대학의 체질 개선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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