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아저씨, 나를 죽이려 했던 아저씨를 많이 많이 혼내주셔야 해요."
10일 오전 광주지법 201호 법정. 지난해 8월 발생한 전남 나주 초등학생 납치ㆍ성폭행 사건의 피고인 고종석(24)씨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피해자 A(8)양의 편지를 대신 읽어 내려가던 어머니 B(38)씨의 목소리엔 금새 물기가 어렸다.
이날 방청석에 앉아 있던 B씨는 "마지막으로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는 재판장 이상현 부장판사의 말에 조용히 일어 섰지만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막상 (고종석의)얼굴을 보니 살이 떨려 정신이 없네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힘겹게 말문을 연 그는 "법원에 간다고 하니 딸이 재판장 아저씨께 꼭 전해달라며 편지를 써서 줬다"며 주머니에서 편지 2장을 꺼내 들었다.
"재판장 아저씨께. 안녕하세요. 저는 ○○이에요. 엄마가 나쁜 아저씨 혼내주러 가신다고 해서 제가 편지를 썼어요. 엄마가 저는 못 간대요." 가늘게 떨리던 B씨의 목소리는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판사 아저씨, 그 아저씨가 또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데리고 갈까 봐 무서워요. 아저씨가 또 데리고 가지 못하게 많이 많이 혼내주세요." 삐뚤삐뚤한 글씨로 쓰인 어린 딸의 편지를 쥐고 있던 B씨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그의 입에선 결국 신음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제가 쓴 편지대로 소원 들어주세요. ○○이가." B씨가 애써 마음을 누르며 편지 낭독을 마치는 순간, 모두가 할말을 잃은 듯 재판정은 숙연해졌다.
B씨는 사건 이후 어린 딸과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현실에 대한 하소연도 털어놓았다. B씨는 "곧 있으면 새 학기인데 딸 아이가 학교 가기도 싫어하고 '엄마 뱃속으로 다시 넣어달라'는 말까지 하며 잠을 자지 못한다"며 "나도 하루에 3시간 이상 자기가 힘들다"고 호소했다. B씨는 이어 "딸은 지금도 잠을 자면서 소리를 지르고, 사건 당시 목졸림 당한 것이 생각난다고 울먹인다"며 "오늘 제가 (딸의 편지를 들고)법정에 나왔다고 해서 딸이 얼마나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엄하게 처벌해 달라"고 말했다.
B씨가 고통스런 심경을 토로하며 '하고 싶은 말'을 끝내자 고씨의 짧은 참회가 이어졌다. 시종일관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던 고씨는 최후 진술을 통해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죄송하다. 반성하고 있다.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고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 성충동 약물치료 15년, 피해자 및 가족 접근금지 등을 구형했다.
검찰은 "고씨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 피해 어린이를 이불째 납치해 성폭행하고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형사 책임을 감경하기 위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더 이상 교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고씨는 지난해 8월 30일 새벽 1시30분쯤 나주의 한 상가형 주택에서 잠을 자고 있던 A양을 이불에 싼 채 납치해 인근 다리 밑에서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선고공판은 31일 오전 9시40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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