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37)씨는 최근 한 온라인 서점에서 딸에게 줄 그림책을 주문했다가 며칠째 오지 않아 매일 딸로부터 투정을 듣고 있다. 불과 두 달 전에 주문했을 때만 해도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도착할 정도로 빠른 배송을 자랑하던 곳이었는데 이번엔 사흘이 지나도 배달이 되지 않고 있다. 서점에 항의하자, 서점 측은 "연말 연시 물량이 늘어난데다 도로 결빙 때문에 택배가 지연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사과했다.
최근 온라인 서점은 과거 경쟁적으로 내세우던 '당일배송' '익일배송' 서비스를 더 이상 대대적으로 광고하지 않고 있다. 이씨 사례 같은 지연과 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뿐 아니라 오픈마켓 등 온라인 쇼핑 이용자들은 지난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택배 지연사태에 당혹해 하고 있다.
빠르기로 소문난 우리나라 택배시장에 이런 지연 사태가 오게 된 원인은 다양하다.
일차적으로 서적택배의 경우 지난해 말 부도 난 택배업체 이노지스 물량을 다른 업체들이 떠안으면서, 온라인 서점에 맞는 배송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한 이유다. 또 최근 잦은 눈에 이어 한파가 몰아치며 도로가 결빙된 것도 원인이다. 택배기사 한 사람이 3~4분에 1개 꼴로 빠르게 배달을 해야 물량 소화가 가능한데 길이 얼어 속도가 늦어지니 물량을 다 소화 못해 지연 물량이 쌓이고, 여기에 또 새 물량이 도착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 원인은 일부 택배기사와 대리점이 영업을 포기하면서 국지적으로 택배조직이 붕괴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물량은 너무 많은데 도로 상황이 안 좋아 배달이 힘든 지역의 경우, 평소 힘들었던 처우 문제와 맞물려 택배기사들이 관두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일부 지역에선 대리점 소속 기사들이 거의 다 그만두는 바람에 택배회사 본사의 관리인력이 대신 투입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지난 연말에는 배송 지연을 겪은 고객들 사이에 "택배 파업이 발생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택배업은 초보와 경력자의 업무 처리 능력에 매우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처럼 배송조직이 무너질 경우 대체인력을 투입하더라도 바로 회복되기가 매우 어렵다.
연중 최대 대목인 설 연휴를 앞두고 이처럼 일부 지역조직의 회복이 더디고 한파도 좀처럼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택배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국토해양부의 증차 및 카파라치 시행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라고 업계는 주장한다.
현재 국토부는 택배물량 증가에 따라 2004년부터 동결된 영업용 화물차량의 증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 영업허가 없이 차량을 운행중인 택배기사의 신청을 받아 영업용 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다음달부터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지방자치단체는 일정 기간 후 불법 운행을 신고토록 하는 '카파라치'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신용불량이나 차량 직접구매 여력 부족 등으로 인해 계속 '무허가 개인택배'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에서 카파라치가 시행되면, 무허가 택배기사들의 손발이 묶여 택배시장에 대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카파라치 제도가 실행되면 택배 차량의 30%가 한꺼번에 도로에서 사라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일어날 택배 대란은 사회ㆍ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비용을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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