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연기·연출한 엽기유머글과 동영상의 틈새 뚫고 기발한 카타르시스 선사광고회사·의류소핑몰 창업… 포토드라마에 상품 홍보 슬쩍방송보다 5년 앞선 PPL 원조지금은 인터넷비즈 마케팅 "CEO 때보다 다양한 도전"
IMF 경제위기의 후폭풍으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38세 선이 되면 직장에서 퇴출) 등 고용 불안에 대한 신조어가 난무하던 2000년대 초반, 백수 생활을 경험한 세대 가운데 '칼이쓰마'를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유머 사이트 '웃긴 대학'에서 배설물과 음주가 난무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각박한 처지에서도 사람들은 잠시나마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뛰어난 유머 감각을 살려 인터넷 비즈니스 전문업체 IMI에서 마케팅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칼이쓰마' 나상혁(31)씨를 최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나씨가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공익근무요원(이하 공익)으로 근무하던 2002년부터다. 천대받던 공익의 애환을 그리기 위해 글을 썼다. 비록 저급하긴 하지만 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성에 유머를 적절히 배합한 그의 글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퍼져나갔고 홈페이지 '쓰마야닷컴' 회원은 45만명을 넘어섰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서 광고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2005년 광고회사를 차렸다. 아이템은 포토드라마를 이용한 광고였다. 나씨는 "글자로 쓴 유머나 웹툰은 포화상태인데다 사실성이 떨어졌고, 동영상은 로딩시간이 길어 사람들이 불편해 했다"며 "리얼리티와 유머를 결합하는 데는 사진에 말풍선을 넣은 포토드라마가 제격이었다"고 설명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등장인물은 나씨와 그의 친구들이 맡았다. 서울 동대문역 인근, 보증금 없이 월세 35만원짜리 비좁은 골방 사무실은 한겨울 삭풍도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고 직원도 없었지만 사업은 번창해 2년 만에 고가의 오피스텔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의 설명대로 포토드라마는 만화와 유사하지만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연출해 찍은 사진에 말풍선을 다는 형식이다. 스토리 안에 상품을 넣었으니 일종의 간접광고(PPL)인데, 지상파 방송보다 무려 5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광고 기법에 청년 백수, 연애담, 가족간의 갈등 등으로 독자들의 공감대를 산 것이 큰 효과를 거뒀다.
비슷한 시기에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열면서 직원 6명이 풍족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형편은 더욱 나아졌다. 배고픈 청춘의 넋두리를 '지금 내 오장육부엔 위와 장이 배제돼 있어' '난 소화기관마저 소화시켜 버린 것 같아' 등으로 표현하거나 백수인 손자에게 '그 나이 처먹도록 백수 짓하며 뒹굴며 찌운 살이 안창살로 여섯 근은 될 꺼다'라는 할머니의 대사 등 원초적인 표현이 난무했지만 그의 명성에 병원, 의류회사,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까지 광고를 의뢰해왔다. 그렇게 만든 포토드라마가 줄잡아 120편에 달한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원하는 수익 창출, 직원 해외 워크숍, 사장실에서 인터폰으로 비서를 통한 직원 호출까지 세 가지 꿈이 있었는데 마지막 것 빼고 다 해봤다"고 성공담을 전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한 탓이었을까. 위기는 곧 찾아왔다. 27세이던 4년 전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일을 게을리했고, 그렇게도 번뜩이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고 어딘가 도망을 치고 싶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광고기획인데 사람들이 '칼이쓰마'라는 배우로 기억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아직은 젊은 나이, 일을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업을 접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쟁이 신세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영자일 때보다 훨씬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머리 쓰고 고민하며 살아야 할 텐데 일찍부터 사장 자리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마케팅보다 경영 문제로 골머리 앓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나씨는 현재 회사 홈페이지 '아이템매니아'(www.itemmania.com)에 '을의 전쟁'이라는 포토드라마를 연재 중이다. 그는 "'갑'과 '을'이 벌이는 인생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을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필살의 전략을 소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청년 창업, 방황, 취업 등 다양한 위치에서 살아온 삶이지만 음악만큼은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해왔다. 나씨가 보컬을 맡고 있는 '쓰마밴드'는 2011년 '손만 잡으려 했는데' '놀러 와' 등 1집 정규앨범을 내고 공연도 했었다. "500장 한정판으로 낸 음반이 45장밖에 안 팔렸지만 즐기기 위해서 한 일이니 나름 성공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즐기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살 겁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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