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11시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 앞에 놓인 베이비박스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려고 누군가 베이비박스의 문을 열었음을 알리는 소리다. 베이비박스는 지난 2009년 이종락 목사가, 불가피하게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처지인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교회 앞에 설치한 일종의 아기 보호 상자.
새해 첫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를 알리는 소리에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간 이 목사의 눈에 태열로 울긋불긋한 아기 얼굴이 들어왔다. 아기를 두고 간 부모는 흔한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2시간쯤 지났을까. 새벽녘에 다시 베이비박스의 벨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소뇌회증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 아기였다. 정영란 전도사는 "월 평균 5명 정도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던 아이들이 최근에는 한 달에 10명, 13명씩도 들어온다"며 "입양특례법이 바뀌고 나서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2배 이상 늘어났다"고 씁쓸해 했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상록보육원에도 지난해 12월 갓난아이 2명이 새로 들어 왔다. 보육원 50년 역사에서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아이가 보육원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부청하(69) 원장은 "두 아이의 부모 모두 '입양을 보낼 수 없어서 아이를 버리게 됐다'는 내용의 쪽지를 남긴 것으로 봐서 입양이 어려워지자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입양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고 친부모에게 출생신고·가족관계등록이 의무화되는 등 입양 절차가 투명해지고 까다로워지면서 공개 입양을 꺼리게 된 부모들이 영아유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경기 양주시에서 관련 법 개정으로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미혼모 A(29)씨가 아이를 낳자마자 폐가에 버려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 되는 사건도 있었다. 한 입양 기관 관계자는 "미혼모들이 입양을 꺼리게 되면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키우거나 불법 입양·낙태를 하는 등 법 개정 이후 여러 심각한 부작용이 염려된다"고 말했다.
아동복지사업단체인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관으로 들어온 아동입양의뢰도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 전인 7월까지는 한 달에 평균 60여명에 이르던 것이 8월 이후에는 평균 3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에 따라 홀트아동복지회 측도 직접 상담을 요청하거나 지역 주민센터·사회복지기관의 담당자 추천을 받아 아이를 입양시키지 못한 미혼모에게 매달 20만원씩 현금을 지원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과연 버려지는 아이들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아동보호시설 관계자는 "미혼모라고 하더라도 일정 기간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도록 하고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한 개정법의 취지는 좋다"면서도 "당장 아이의 권리와 복지는 친부모에게 달린 만큼 미혼모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후견인이 대신 입양 절차를 처리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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