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각료 인사가 한창이지만 인사 보안이 이슈가 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인사는 보안보다 검증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사는 언론에 먼저 공개돼 여론의 사전 검증 절차를 밟는다. 정치권도 물망에 오른 인사의 과거 경력과 발언 등을 공격적으로 문제 삼으며 정략적 검증을 시도한다. 이 같은 인사 방식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은 인준한다는 헌법 규정에서 출발한다.
상원의 인준청문회를 통과의례로 본다면 미국에서도 철통 보안 속에 깜작 인사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권이 선호하는 방식의 깜짝 인사는 드물다.
깜짝 인사를 할 경우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을 수 있지만 검증의 부담은 훨씬 크다. 검증을 많이 할수록 의회 차원의 뒷조사가 길어져 인준 기간이 장기화한다. 2차 대전 이후 대통령 임명직 약 600여명의 인준기간은 평균 9주이지만 5개월 이상 걸린 경우도 10%에 이른다. 상원은 검증을 이유로 무기한 인준을 보류(홀드)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깜짝 인사, 보안 인사의 피해가 행정 공백으로 나타나곤 한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도 '홀드'로 인해 상원 인준이 4개월이나 미뤄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때 미국대사가 공석인 이변이 발생했다.
미국의 각료 인사가 검증의 문제라는 것은 최근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인사에서도 확인됐다. 당초 국무장관은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과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경합했으나 백악관은 라이스를 선호했다. 이에 따라 백악관은 언론에 '라이스 국무-케리 국방' 카드를 흘려 여론 점검을 시도했다. 그러나 상원 공화당이 라이스에 난색을 표하면서 백악관과 의회가 충돌하는 양상이 전개되자 라이스는 스스로 물러났다. 결국 국무장관 자리는 인준청문회 통과가 무난한 케리에게 돌아갔다. 이처럼 사전 검증이 까다롭기 때문에 개인적 흠결이 있는 인사는 스스로 인선 대상에서 물러나는 게 보통이다. 물론 지명 이전에 백악관, 인사실, 국세청, 연방수사국(FBI), 공직윤리실 등의 검증에서 상당수가 걸러진다. 검증에 자신이 없는 인사들은 인준청문회가 필요 없는 백악관 보좌진으로 자리를 옮겨 다음 기회를 엿보기도 한다. 7일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지명된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ㆍ국가안보 보좌관이 그런 경우다. 그는 2009년에도 CIA 국장 물망에 올랐지만 테러 용의자 고문 연루 의혹이 제기되자 꿈을 접고 4년간 절치부심했다.
미국의 인선 과정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북한을 방문 중인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는 4년 전 상무장관에 지명됐으나 정치자금 조사가 진행되자 스스로 물러났다. 오바마의 정치적 스승인 톰 대슐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보건장관에 지명됐다가 세금 문제가 불거지자 자진 사퇴했다. 라이스 유엔대사처럼 인준청문회가 대통령에 반대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미국 인사 방식의 폐해로 지적된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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