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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신데렐라 "나도 이제 금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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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신데렐라 "나도 이제 금벅지"

입력
2013.01.0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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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스키협회는 최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예상 참가 선수 현황표를 작성했다. 2018년 국내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겨냥한 유망주들이 주를 이룬다. 스키 종목에서 15명 내외를 출전시킨다는 큰 틀을 세웠는데 이들 중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의 기대주 정해림(18ㆍ군포 수리고)의 국제스키연맹(FIS) 랭킹이 21위로 가장 높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탓에 절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소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지난 3일 경기 포천 베어스타운에서 만난 '용문사 신데렐라' 정해림은 티 없이 맑고 밝은 모습으로 '장밋빛 미래'를 노래했다.

절 오르며 다져진 허벅지로 '금벅지' 도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한 정해림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2010년에 여자 최연소 스노보드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곧 시련이 찾아왔다. 2011년 10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은 것. 살고 있는 집까지 넘어간 터라 갈 곳도 잃었다. 다행히 '보드 타는 스님'으로 알려진 호산스님의 도움으로 정해림 가족은 경기 양평의 용문사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사춘기의 나이에 절에서 수도자 생활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해림은 "새벽 4시면 일어나 예불을 해야 한다. 깜깜한 암흑 속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며 "슈퍼마켓을 가려고 해도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불편하다. 원래 고기도 먹을 수 없지만 호산스님이 닭 가슴살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시는 등 배려를 해줘서 적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머니, 동생 유림(15ㆍ단월중)과 함께 한방에서 지내지만 합숙 훈련과 대회 준비 기간으로 한 해 중 절반 이상을 외지에서 생활한다.

절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산을 타면서 체력 훈련을 한 덕분에 남자 선수 못지않은 강한 허벅지를 갖게 됐다. 빠른 활강에 도움을 주는 두꺼운 허벅지는 정해림의 최대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는 "별명이 '벅지'다. 허벅지가 두꺼워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고, 회전력이 좋아진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처럼 '금벅지'가 될 수 있다'는 칭찬에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세계선수권 최초 16강 목표

정해림은 지난해 11월14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북아메리카컵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1차 대회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세계랭킹 1위 패트리자 쿠머(스위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 한국 선수 중 국제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우승한 건 정해림이 최초. 그는 한 달 뒤에 열린 3차 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라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렸다. 북아메리카컵은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다음으로 큰 대회다. 정해림은 "8강을 목표로 하고 갔는데 의외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우승하고도 얼떨떨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자비로 대회에 출전한 터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혼자서 장비를 든 채 일반인이 이용하는 셔틀버스 타고 대회장을 오르내리며 기적을 연출했다.

자신의 이름을 톡톡히 알린 그는 이제 오는 25~2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스노보드 세계선수권을 겨냥하고 있다. "성적이 어떻게 될지 기대된다"며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 그는 첫 번째 세계선수권 대회 목표를 16강으로 정했다. "북미컵과는 달리 세계적인 선수들이 다 참가하는 대회다. 아직 세계대회에서 16강에 오른 한국 선수가 없다. 최초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샘 많은 '용문사' 스노보드 자매

정해림의 동생 유림이는 스노보드 하프파이브의 유망주다. 그는 현재 올림픽 대표팀에 소속돼 미국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해 스노보드 자매의 운명은 얄궂게 갈렸다. 지난해 3월 스페인에 세계주니어선수권 경기 전날부터 꼬였다. 해림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예민한데 보드 다리미로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머리채까지 잡고 한바탕 싸웠다. 동생이 사춘기라 그런지 샘이 많을 때인데 결국 참지 못했다"고 힘없이 말했다. 다음 날 둘은 나란히 경기를 펼쳤고,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언니 해림은 넘어지는 바람에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유림은 7위를 차지하면서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해림은 "지난해 제대로 뛴 경기가 없었는데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도 부진한 탓에 대표팀에서도 탈락했다. 대표팀 탈락으로 자비로 경기에 출전해야 했고, 국제경기 출전 기회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며 아쉬워했다.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모기업인 경동제약이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고. 그는 "지난 북미컵 출전과 훈련으로 1,200만원이 들었고, 세계선수권 경비도 500만원이 들어간다. 대표팀이 아니다 보니 슬러프를 빌리는 비용까지 내야 한다"며 "그렇다 보니 대회마다 부담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국가대표팀 재합류를 위해 이번 세계선수권이 특히 중요하다. 대한스키협회가 이번 대회에서 32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 월드컵 대회 출전 등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선수권이 소치 올림픽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세계랭킹이 높아져 앞 순번으로 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감을 가지고 목표 달성에 도전하겠다"고 파이팅을 외쳤다.

포천=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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