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일본 미야코지마, 블루의 종결!… 뼛속까지 '미야코 블루'에 물들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일본 미야코지마, 블루의 종결!… 뼛속까지 '미야코 블루'에 물들다

입력
2013.01.09 11:29
0 0

어느 때부턴가 자연 풍광엔 당연한 듯 가격이 매겨지기 시작했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데 얼마, 새해 일출을 보는 데 얼마, 타는 듯이 붉은 석양을 구경하는 데 또 얼마. 보는 면적이 클수록, 자리가 안락할수록, 성수기일수록 치러야 하는 돈은 겅중겅중 뛴다.

어느새 이에 적응한 도시인들은 어쩌다 장엄한 일출을 마주하게 되기라도 하는 날엔 횡재한 듯 황송해지는 기분을 어쩔 수 없다. 곧이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친 아이처럼 어디엔가 있을 징수원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하는 것이다.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沖繩)현의 미야코지마(宮古島)에서는 시종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한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낙원 같은 연녹색 바다와 눈부신 백사장, 그리고 불안할 만큼 크고 아름다운 일출을 배가 부르도록 훔쳐 볼 수 있다.

미야코 블루를 찾아 남쪽으로 튀다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는 오키나와현을 배경으로 한다. 권력과 이념, 자본에 염증을 내며 '남쪽으로 튄' 우에하라 이치로 가족은 일본 최남단의 섬에서 자급자족의 낙원을 발견한다. 이들이 둥지를 튼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간 곳에 미야코지마가 있다.

어중간한 위치 때문에 '동양의 하와이'라든가 '일본 최남단'이란 화려한 수식을 인근 다른 섬들에게 빼앗긴 미야코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을 안고 섬을 찾아 든 이들에게 숨겨놓은 절경을 펼쳐 보인다.

"일본 최고의 해변 10곳 중 3곳이 미야코지마의 해변입니다. 바다색만으로는 몰디브 못지 않죠."

섬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찾은 스나야마 비치에서 가이드가 말했다. 야트막한 모래언덕 뒤에 가려진 스나야마 비치는 에메랄드 그린색 바다와 하얀 모래가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관광객들의 눈을 홀리는 에메랄드 그린의 비밀은 산호초가 오랜 세월 바닷물에 쓸려 그 가루가 바닥에 쌓이고 그것이 태양빛을 반사하면서 완성된다. 미야코지마는 산호초가 성장한 후 기반과 함께 융기해서 만들어진 섬답게 바다 빛깔에 있어서는 인근 섬들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여기선 에메랄드 그린이란 말 대신 '미야코 블루'란 말을 씁니다. 여기뿐 아니라 섬 어딜 가도 저런 색이에요."

가이드는 자랑스러운 듯 스나야마의 바다를 가리켰다. 투명한 미야코 블루와 짝을 이루는 희고 부드러운 모래는 한여름에도 달궈지는 법이 없는데, 명도가 높아 볕을 모조리 반사하기 때문이란다.

모래산 뒤의 은신처 같은 스나야마 비치와 장장 7㎞에 걸쳐 펼쳐지는 마에하마 비치 등 굳이 유명한 해변이 아니더라도, 미야코지마의 모든 해변은 미야코 블루와 눈부신 백사가 기본이다. 차를 타고 섬을 돌다가 바다가 보이는 곳 어디든 내려 자기만의 해변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는 곳이다.

"내일은 날씨가 더 맑아야 할 텐데요."

가이드는 미야코의 겨울 하늘을 수놓은 옅은 구름을 연신 원망했다. 다음 행선지이자 동중국해와 태평양이 만나는 관광 명소 히가시 헨나자키 때문이다. 자키는 곶이란 뜻인데, 지도 상에서 길고 가느다란 꼬리처럼 비죽 나와 있어 그 끝에 서면 마치 바다 위에 다이빙대를 올려 놓고 선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기대를 안고 일단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죽음의 잔 돌리기, 일본 아닌 일본

해양 스포츠 인파와 골퍼들을 제외하면 미야코지마의 겨울은 극도로 조용하다. 하루 종일 차를 달려도 주민 한 명 마주치기 어렵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과 담배밭 사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섬 주민들은 밤이 되자 이자카야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젊은층 대부분이 떠난 미야코지마에서 돈 쓸 곳은 사실상 이자카야뿐이다. 대형 쇼핑몰은 신시가지에 3~4곳이 전부고 맥도날드도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들어왔다. 낮 동안 밭에서 일한 섬 토박이들은 밤이 되면 이자카야로 속속 모여든다.

"이 곳 사람들은 일본 본토와는 생각하는 것도, 생김새도 판이합니다. 일본이지만 일본이라고 하기가 애매하죠. 지리적으로도 대만이나 필리핀과 더 가깝고요."

오키나와관광컨벤션뷰로에서 나온 부용범 소장의 말처럼 이곳 이자카야에는 퇴근 후 홀로 구석에 앉아 조용히 청주를 홀짝이는 소심한 일본인은 찾아볼 수 없다. 거무스름한 얼굴과 짧게 깎은 백발, 다부진 체격이 인상적인 '미야코 아저씨'들은 무리를 지어 우르르 들어와 30도가 넘는 토속주 아와모리로 떠들썩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키나와 특산품인 아와모리주는 남방미로 빚은 소주인데, 증류주임에도 불구하고 사케처럼 특유의 향이 살아 있다. 이 좁은 섬에만 아와모리 주조소가 7곳에 이를 정도로 미야코 주민들의 삶에 깊게 뿌리 박힌 술이다.

미야코 사람들의 술 사랑은 오키나와 전체로 봐도 유별나다. 섬 토박이들의 술자리를 체험했던 한 한국 주당은 "도저히 배겨날 수 없을 정도"란 말로 감상을 대신했다. 특鎌?것은 한국처럼 '잔 돌리기' 문화가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 공개성이 추가된다. 즉 술 권하기가 암암리에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둘러앉은 사람 중 한 명이 일어나 자기 소개를 한 후 자신의 잔으로 술을 마시고 그 잔 그대로 앉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술을 돌린다. 그러면 옆에 앉은 사람이 일어나 똑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술을 돌린다. 결국 모든 사람이 고주망태가 된 후에야 파장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귀가하지 않고 다 함께 스테이크로 해장하러 가는 것도 미야코만의 독특한 풍습이다.

이 때문에 미야코지마는 오키나와현 가운데서도 가장 음주운전 단속이 강력한 지역으로 꼽힌다. 아침이건 밤이건, 대로변이건 골목길이건 가리지 않고 단속을 하는데 이로 인해 생겨난 미야코지마의 명물이 바로 마모루 군이다. 경찰 모양을 본뜬 마모루 군은 당국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탄생한 인형으로, 섬 곳곳에 배치돼 치안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생김새가 조금씩 다른 40여개의 마모루 군과 그 중 딱 한 명 섞여 있는 여경 마모루를 찾아내는 것은 미야코지마 관광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360도, 시선을 압도하는 대양의 파노라마

아와모리주의 향이 채 가시지 않은 다음날, 눈부신 태양에 못 이겨 눈을 떴다. 가이드의 햇볕 타령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듯 본격적으로 태양이 구석구석 깃든 미야코지마는 완연히 다른 빛깔을 띠고 있었다. 히가시 헨나자키에 가기 전 골프장에 들렀다.

섬에는 18홀 골프장이 3곳 있는데 이중 시기라 베이와 에메랄드 코스트는 바다를 끼고 조성된 이색적인 홀로 일본 본토의 골퍼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하다. 가장 추운 1월에도 기온이 영상 17℃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겨울이면 일본뿐 아니라 인근 나라에서도 골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중 일본에서 유일하게 모든 홀에서 바다를 보며 골프를 칠 수 있는 시기라 베이는 새파란 잔디와 필드 곳곳에 우거진 아열대 식물들로 계절 감각을 잃게 만든다.

"바닷가라 바람이 많이 불긴 하지만 바람과 싸우고 또 역으로 이용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죠."

에메랄드 코스트에는 아예 바다를 가로질러 샷을 날릴 수 있는 홀이 있어 골프 초보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동행한 한 골퍼는 두 골프장 모두 이용 요금이 서울 근교 골프장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골프장을 떠나 동쪽으로 내달렸다. 멀리 히가시 헨나자키의 등대가 보이기 시작하자 일제히 차에서 내려 걸었다. 길이 2㎞에 폭 100~200m 안팎의 좁다란 곶을 걷는 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걷는 내내 왼쪽으로는 동중국해가 오른쪽으로는 태평양이 풍족하게 파도 쳤다. 구불구불한 곶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주고 받던 잡담이 끊겼다. 저마다 감탄을 흘렸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평소 알던 일자 수평선 대신 시야를 마비시키는 360도의 수평선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문득 우에하라 가족이 찾아 떠난 낙원의 이름이 떠올랐다. 파이파티로마.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지도에 실리기를 거부한 섬. 이곳에서라면 저 멀리 파이파티로마가 보일 것도 같았다.

여행수첩

●인천에서 오키나와 나하 공항으로 간 뒤,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다시 50분 정도 가면 미야코지마에 닿는다. 아시아나와 진에어가 매일 나하행 항공편을 운항한다. 2월 8일 아시아나 항공에서 처음으로 미야코 직항 전세기를 띄운다. 문의 롯데관광 (02)2075-3810 ●대중교통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전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국제면허증과 한국 면허증, 여권 사본 등의 서류를 갖춰야 한다. ●겨울 평균기온은 영상 17~19도 정도로 온난한 편이다. 중요한 것은 온도가 아니라 햇볕이다. 맑을 때와 흐릴 때의 바다색은 천지차이이므로 날씨를 잘 계산해서 떠나야 한다. ●시내 이자카야에서 회와 초밥을 먹을 수 있지만 어촌이 발달돼 있지 않아 싸고 신선한 해산물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토속 음식을 맛 보고 싶다면 밀가루로 만든 미야코식 소바(국수)와 크고 실하기로 유명한 망고, 설탕을 씌운 도넛 사타 안다기 정도가 있다.

오키나와=황수현 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