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도를 넘는 온도와 유독한 연기 속의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뱀의 생명력에 놀랐습니다."
지난 8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중랑구 면목동 5층짜리 건물의 지하 1층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 65명은 자물쇠로 잠겨 있던 73㎡(22평) 크기의 사무실 출입문을 절단기로 자르자 내부는 시꺼먼 연기로 가득 찼다. 화재진압을 위해 내부로 진입했던 25년 경력의 서울 중랑소방서 김중우(50)소방관은 화재 구조 작업 중 발화지점 반대편 구석에 길고 가느다란 형체들이 꿈틀거리는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불이 난 곳은 다름아닌 희귀동물 분양센터. 이 곳은 뱀, 도마뱀, 거북이 등 27종 200여마리의 파충류를 기르고 있었다. 15분 가량 거세게 타올랐던 불길 속에 대부분의 동물들이 잿더미로 변했지만 그 가운데 뱀 10마리, 도마뱀 7마리, 거북이 3마리가 불길과 유독가스 속에서도 발화지점 반대편 구석에 웅크린 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중에는 길이 3~5m 가량의 보아뱀들도 섞여 있었다. 김 소방관은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 열기와 연기 속에서 1분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런 강인함은 사람도 배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경탄을 금치 못했다.
뱀을 비롯한 이 파충류들은 어떻게 극한 환경에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 박천식 건국대 교수(수의학)는 "파충류는 산소호흡 외 이산화탄소로도 호흡을 할 수 있어 화재 현장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고온만 피한다면 화재현장에서도 버틸 수 있었지만 나머지 180여마리는 불길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경찰은 한파 속에 따뜻한 서식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깔아둔 전기장판에서 누전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화재에서 살아남은 낯선 뱀들을 구경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한 사람만은 망연자실한 채 낯빛이 어두웠다. 10년 전 지인을 통해 뱀의 매력에 빠져 지난해 분양센터를 직접 차렸다는 주인 최모(29)씨다. 그는 환경부와 세관의 허가를 받아 미국, 캐나다, 이집트 등에서 마리당 최고 수 백만 원에 구매, 애지중지 키워왔기 때문이다. 많은 파충류들이 떼죽음을 당했기에 결국 눈물을 보였던 최씨는 "살아 남은 뱀이나 도마뱀 같은 경우 치료가 필요한 상태지만 평소에도 파충류가 다치면 동호회 사람들끼리 자체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구조된 파충류를 돌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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