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에서도 부자 증세 가능할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부자 증세 가능할까

입력
2013.01.08 11:42
0 0

미국 재정절벽 협상이 타결돼 세계 경제가 한숨을 돌리고 있다. 감세 혜택이 종료되고 정부 지출이 삭감되면 실업률이 오르고 저성장이 와 세계 경제가 충격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미국 정치권의 극적인 합의로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게 된 것이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부자 증세다. 개인 연소득 40만 달러, 부부 합산 연소득 45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의 소득세율을 기존 35%에서 39.6%로 올리는 것인데 미국에서 세금을 인상하는 것은 20여년 만이다.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 재임 시 대규모 감세가 이뤄졌다. 그리고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1기 등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어도 세금을 올리지 못했고 그 사이 재정은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이번 합의는 따라서 경제 파탄을 막았다는 단기적 성과를 거둔 것 외에 감세가 투자와 고용 확대,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근거 없는 신화를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은 한 고비를 넘겼지만 대서양 건너 프랑스는 부자 증세로 논란에 휩싸여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연소득 100만 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최고 75%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하자 부자들이 대대적인 저항에 나선 것이다. '국민 배우' 제라드 드파르디외는 세금을 피해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고, 헌법재판소는 기술적 문제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부자 증세에 반발, 벨기에 국적을 신청한 프랑스인은 126명으로 전년의 2배에 이른다. 올랑드 정부는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는 정부의 노력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하지만 일부 언론은 부자 증세 정책이 수정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프랑스의 부자가 모두 증세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로레알의 상속인 릴리안 베탕쿠르, 정유업체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 에어프랑스 회장 장 시릴 스피네타, 광고재벌 퍼블리시스의 CEO 모리스 레비 등은 정부 재정 적자의 해결을 위해 이미 2011년 "부자들이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특별기부를 신설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있다고 해서 부자 증세가 순조롭게 이뤄지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증세와 관련해 주목받는 또 다른 나라가 한국이다. 5세까지 무상보육, 고교 무상교육 확대, 대학 등록금 반값 인하, 셋째 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 중증 질환 건강보험 100% 부담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공약을 이행하려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 측은 재정과 조세 개혁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재정의 씀씀이를 조정하고 탈루 세금을 적발하면 재원 확보에 도움이 되지만 정치권과 세무 당국의 의지와 능력을 볼 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설사 재정과 조세 개혁이 이뤄진다 해도 그렇게 조성된 재원이 복지 공약을 이행하는데 충분하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증세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보는데 박 당선인 측은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

박 당선인은 원래 감세론자로 분류됐던 정치인이다. 지지자의 상당수가 부자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증세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증세를 한다면 결국 부자가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하는 부자 증세가 될 게 뻔해 그들이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오바마와 올랑드는 지지층의 동의를 얻어 부자 증세에 나섰지만 박 당선인이 그렇게 하려면 지지층의 뜻을 거슬러야 한다. 게다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전개한 이명박 정부의 대대적인 감세 정책에 동의하는 인사가 여권에는 아직도 존재한다.

박 당선인 측은 국민에게 한 복지 공약의 이행을 위해 구체적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증세를 피하면서 복지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박 당선인 측에서 최근 영입설이 돌았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복지 더 하겠다면서 증세를 안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전체적 흐름으로 보면 한국이라고 해서 부자 증세를 피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