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폐지’ 아닌 ‘시험 부담’ 완화해야
황영남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장
학교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곳이자 공부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학생이 잘 배웠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시험이다. 시험은 학생이 잘한 것은 더 잘하게,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피드백 등 교육의 중요한 활동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이러한 학생평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 이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물론 우리 교육은 입시경쟁, 선행학습으로 대표되는 과잉학습, 지나친 학습부담의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만족도나 흥미는 최하위 수준이라는 현실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시험부담을 완화하는 노력과 정책은 필요하다. 교육학자이자 교육부장관 출신인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의 ‘중1시험 폐지’ 공약도 평가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외면해서가 아니며, 학생들의 시험부담 완화를 통해 쉼표 있는 시간을 갖고 진로탐색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우리 교육의 방향이 ‘학력 중심’에서 ‘인성 중심’으로, ‘진학 중심’에서 ‘진로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당연히 공감한다. 그러나 ‘중1 시험 폐지’라는 용어가 갖는 극단성으로 인해 평가에 대한 교육적, 사회적 부정 여론 확산은 물론 학교현장과 학생, 학부모의 우려와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중1 시험 폐지 논란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학부모는 지금보다 학교가 공부를 더 잘 시켜주길 바라고 있다. 따라서 기초학력 형성시기인 중학교 1학년의 시험 폐지가 학력 저하로 이어지거나 단지 ‘노는 학년’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와 학원에 힘든 아이들이 중1 동안 시험 안 본다고 학력이 크게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나친 기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초중고 학생 대상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서울 지역의 기초학력 미달비율이 3.3%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지역 학생들의 강ㆍ남북간,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격차 또한 크므로 시험폐지와 완화가 가져올 교육격차 효과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둘째, 사교육 의존도의 심화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된다. 많은 학부모들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자녀의 학업성취 수준이 다른 아이와 비교해 볼 때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초등학생 때는 서술식 평가로 자녀의 수준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지만 중1이 되면 고입, 나아가 대입을 염두에 두고 자녀의 학력수준을 궁금해 한다. 이러한 궁금증을 학교에서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흔히 말하는 사교육시장의 ‘레벨테스트’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심화될 수 있다.
셋째, 고입전형과 교육과정, 평가방식의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는 고입에 중 2, 3학년 내신만 반영되지만, 올해 입학한 중1학년생부터는 전 학년 성적이 반영된다. 또한 현재 시행되는 중학교 집중이수제로 인해 학교별, 교과별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를 감안하여 학년별 교과 편성 문제, 고입에 어떻게 성적을 산출할 것인지 모형이 구완돼야 하며, 교과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이 먼저 개정돼야 하는 과제 또한 있다.
문 교육감이 이러한 교육계의 우려에 대해, 교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험을 안 보는 것이 아니라 평가 방법을 개선, 지필평가 중심의 시험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이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는 ‘중1 진로탐색집중학년제’를 운영한다는 의미다”라고 밝힌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 중1시험 폐지는 충분한 학교현장의 여론 수렴과 시범학교 운영 등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학생들의 진로모색과 직업탐구를 위해 1974년 도입된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도 기업 및 지역사회의 인프라 구축에 40여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우리도 지역 연계 등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이 선결과제다. 시험부담은 완화하되 시험은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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