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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민정치'다

입력
2013.01.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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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인가, 정당정치인가.' 작년 1월 필자의 첫 '아침을 열며' 칼럼 제목이다. 무소속 박원순 시장의 당선과 정치권 외부 인사인 안철수 교수의 돌풍으로 시작된 시민정치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정당정치의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시민ㆍ정당정치를 생각한다.' 작년 9월 18일자 필자의 칼럼 제목이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교수의 단일화 방식에 대한 정치공학적 계산을 넘어 보다 근본적으로 시민정치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정당정치를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그래도 시민정치다.' 이제 필자가 지난 1년간 써 온 '아침을 열며'를 끝맺기 위한 마지막 칼럼의 제목이다.

대선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그동안 소위 '안철수 현상'으로 불리어 온 '시민정치'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가령 새누리당의 한 정치쇄신특별위원은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을 배경으로 등장한 안철수 현상은 또 다른 하나의 환상으로 드러났으며, 이제 그 환상이 꺼져가고 있다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제 안철수 현상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당의 존재가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줄 시기가 왔다며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을 확실하게 실천해 이제 정당도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대선 패배의 멘붕(멘털 붕괴)에 빠진 야권에서도 패배의 한 원인으로 시민정치의 이름으로 정치개혁 이슈들을 앞세우다보니 보다 유권자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고, 특히 불안한 중장년층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실제적인 민생 이슈들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다시 생각해보자. 안철수 현상은 꺼져가고 있는 환상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환멸, 뉴미디어의 등장, 식견 있는 비판적 시민의 참여 등 시대적 변화를 배경으로 등장한 시민정치 현상의 한국적 발현이며 대선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서 정치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이제 정당도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새해 포부가 무색하게도 대선이 끝나자 대선 과정에서 온갖 감언이설로 내놓았던 정치 개혁 공약은 나 몰라라 하면서 지역ㆍ민원 예산 따먹기에만 몰두한 후 버젓이 외유성 출장에 나선 것이 현 한국 정당정치의 모습이다. 야권의 대선 패배 책임론과 향후 야권 재편을 위한 논의도 시민정치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에서 다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즉 민생 이슈들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전략적 패인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시민정치에 부합하는 혁명적인 변화의 모습과 미래 비전을 보여주기 못했기 때문이다. 야권 재편에 있어서도 안철수 변수 혹은 안철수 신당 등 안철수 개인과 정치공학 차원의 논의를 넘어 시민정치의 도도한 흐름을 직시하고 어떻게 그 열망을 새로운 정당정치의 그릇에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자. 그나마 시민정치의 동력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비록 정치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새누리당 조차 국회윤리위원회와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있어 시민사회 인사의 참여,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있어 정당공천 폐지, 국민참여경선 도입 등 시민정치의 개혁적 요구를 반영한 공약들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시민네트워크 형 정당, 시민총회를 통한 정치개혁 심의 등 새로운 시민정치 정책과 아이디어들이 아젠다에 떠오른 바 있다. 나아가 중앙정치를 넘어 지방정치 차원까지 넓히면 참여예산제로부터 마을 만들기와 사회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시민정치의 실험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시민정치다. 최소한 대선 멘붕을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필자의 생각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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