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新春文藝) 당선은 청춘에게 바쳐지는 지성의 월계관이었다. 적어도 디지털혁명 이전까지는 그랬다. 거리의 낙엽이 가을 찬바람에 감돌 무렵부터 경향(京鄕) 각지의 수많은 문학도들은 계절병을 앓곤 했다. 긴긴 겨울 밤, 면돗날처럼 시퍼렇게 날을 세워 200자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새겨 넣은 시와 소설은 단순한 기예(技藝)가 아니라, 시대를 향한 청년 정신의 사자후이기도 했다.
■ 한국일보 신춘문예도 수많은 별들을 배출했다. 작가로는 의 김승옥(62년)에 이어, 이듬해엔 단편 를 응모한 최인호가 사상 최연소인 서울고 2학년생으로 입선하면서 도시적 감수성이 빛나는 문장을 우리 문학에 선보였다. 찬란한 '소설의 시대'로 꼽히는 70~80년대 문단을 빛낸 윤흥길(68년)과 윤후명(79), 극작가 오태석(67)과 시인 박이도(62) 이근배(64) 김종철(68년) 정일근(85년) 김기택(89) 등도 한국일보가 낳은 걸출한 문인들이다.
■ 오랜 역사만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얽힌 뒷얘기도 많다. 최인호는 당선 심사의견에도 불구하고 고교생에게 너무 큰 부담일 수 있다는 의견에 가작이 됐다고 한다. 정일근은 도하 각 신문의 신춘문예를 휩쓸어 '신춘문예 5관왕'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엄격한 심사기준에 미치지 못해 당선작이 나오지 못한 해도 적지 않았고, 어떤 때는 원고가 분실돼 한바탕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 박맹호 민음사 회장도 신춘문예 비사(秘史)의 주인공이다. 그가 55년 한국일보 1회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은 단편 이다. '부산정치파동'을 소재로 이승만 정권의 독재적 속성을 통렬히 야유한 관념소설이다. 평론가 백철 선생은 그의 작품을 1석(당선작)에 밀었으나, 정치풍자의 민감성 때문인 듯 최종심에서 탈락됐다. 그러한 고배는 그에게 출판에 뛰어들어 우리 문단의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된 출판그룹 민음사를 일구는 계기가 됐다. 한국일보는 당시 경위를 살펴 신춘문예 사상 처음으로 그를 '2013년 명예당선자'로 선정했다. 아득한 세월의 강을 떠돈 문학의 월계관이 이제 주인을 찾은 셈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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